*'세계의 미래'를 대주제로 "출판문화가 할 역할은?"세계 최대 규모 책의 잔치인 제53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9일 개막해 15일까지 계속된다.
전 세계 105개 국 6,671개 출판사가 참가해 신간 9만 9,815종을 포함한 40만 666종의 책을 선보이는 전시장은, 30여만 명으로 예상되는 출판업자 서적상 작가 및 일반 도서 애호가들의 방문으로 여느 해처럼 활기찬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미국 뉴욕의 테러 참사에 이어, 도서전 개막 직전 개시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습으로 당초 참가키로 했던 미국 출판사들(대부분 뉴욕에 본사를두고 있다)이 대거 참여를 취소해 큰 알맹이가 빠진 행사가 되어 버렸다.
사이몬 앤 슈스터 등 세계적인 메이저 출판사를 포함한 미국측 주요 참가인사의 90% 이상이 불참했다는 것이 주최측의 추산이다.
10일 둘러본 미국 출판사들의 부스가 자리잡고 있는 제8전시장은 곳곳에 전시용 부스들이 빈 채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 썰렁한 모습이었다.
특히 유독 이 전시장만 무장 경관들이 순찰하며 입장객의 소지품을 일일이 검색하는 살벌한 풍경이었다.
이광자 시공주니어 편집장은 “미팅을 약속했던 미국측 출판사 관계자들로부터 잇단 취소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테러와는 직접 관계가없는 듯한 일본은 대표적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 슈에이샤(集英社) 쇼오가쿠관(小學館) 출판사 등 참가 예정18개 출판사 중 10개가 참가하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이들 출판사는 텅 빈 부스 앞에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불참한다”는 메시지를 붙여놓고 있었다.
실제 독일은 테러 사태 이후 뉴욕에 이어 제2의 테러가 예상됐던 지역이기도 하다. 주범으로 지목받는 오사마 빈 라덴이 유학했고 그의 추종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탓이다.
거대한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장 한가운데 위치한 72층짜리 박람회 센터 빌딩은 뉴욕 테러사태가 발생한 바로 당일 테러 위험을 이유로 급거 전시장을 폐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도서전 주최측은 9월 열린 오토쇼를 무사히 마치는 등 보안에 자신을 보이는 모습이다.
지난 해 처음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던 북한은 올해도 부스를 예약했으나 참가하지 않았다. 중국은 65개나 되는 부스를 설치해 세계 출판시장에서도 괄목상대임을 입증했다.
하여튼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전시회의 대주제를 ‘세계의 미래(Futura Mundi)’로 정해 인류의 미래에 대한출판문화의 기여를 논의한다.
이를 위해 개막에 앞서 세계 각국의 저명한 출판전문인회의에서 5개 항으로 된 ‘대질문(大質問)’을 화두로 던졌다.
5개 항의 대질문이란 ▲영상이 독서물을 얼마나 빨리 대체하게 될 것인가 ▲향후 5년간 도서관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 ▲출판인과 작가, 서적상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새로운 기술은 번역 시장을 바꾸어 놓을 것인가 ▲출판인과 작가는 디지털 환경에서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난 해 만화와 e-북과 관련된 논의가 주류를 이룬 것에 비하면 올해 도서전은 여기에서 나아가 세계적 출판경향의 변화와 그 파장을 차분히 논의하는 자리가 된 셈이다.
올해 도서전의 주제국은 그리스다. 21세기의 시작에 걸맞게 주제국이 된 그리스는 ‘이타카로 향하는 새로운 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주제국가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타카는 호머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트로이전쟁에 참전했던 오디세우스가 기나긴 모험의 항해 끝에 찾아 돌아가야 하는 고향이다.
“독서는 사상과 환상으로의 여행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컨셉트가 여기 상징되어 있다. 그리스 대통령 콘스탄티노스 스테파노풀로스가 슈뢰더 독일 총리와 함께 도서전 개막식에 참석했고, 그리스를 대표하는 국민가수로‘기차는 8시에 떠나네’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가 10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하우스에서 기념공연을 가졌다.
한국에서는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나춘호)를 주축으로 문학동네 디자인하우스 사계절 예림당 책세상 한국문학번역원 등 15개 출판사 및 관련단체가 한국관을 마련해 참여했다.
한국관은 국내 출간된 1,384종1,793책의 도서를 전시하고 한국의 출판문화를 홍보하는 한편 우리 도서의 저작권 수출을 위한 기반 다지기 작업을 하게 된다.
한국관에 공동 참여하는 출판사 외에도 영진닷컴, 웅진닷컴 등 출판사와 와이즈북 등 e-북 업체, 에릭양 에이전시 등 저작권 업체 등 9개 출판관련 단체가 개별 부스를 설치해 예년에 비해 한결 적극적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공략에 나섰다.
15세기초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 직후부터 인쇄업자와 작가들이 참여한 ‘책시장(Buchmesse)’으로 시작돼 1564년 이후 정기적으로 개최돼 온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세계 최고의 역사를 가진 최대의 도서전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됐다가 1949년 재개된 후 해마다 계속돼 온 이 도서전은 세계 출판문화의 진흥 및 자유정신 고양의 장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90년대 이후이 도서전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커져 올해만 하더라도 500여 명의 출판업자와 서적수입상, 작가, 출판 디자이너 등이 도서전을 보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를 찾았다.
도서 전시와 저작권 계약, 상담 외에도 작가와 독자의만남, 국제출판협회(IPA) 등 단체들의 회의와 포럼 등 크고 작은 행사가 계속된 후 도서전은 14일 독일출판서적협회가 주관하는 ‘독일 저술가 평화상’ 시상을 한 뒤 폐막한다.
올해 평화상 수상자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사상가로 20세기 독일 지성을 대표하는 사회학자,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72)로 결정됐다.
/프랑크푸르트=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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