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상으로만 전해 온 궁예도성(弓裔都城ㆍ905~918년)의 구조와 잔존 실태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논문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표됐다.육군사관학교 이재(사학과) 교수는 11일 강원 철원군 삼각 전적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2회 태봉제에서 “휴전선비무장지대 내 풍천원 들판을 4차례 답사해 궁예 도성의 실체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교수는 “궁예도성은 문헌상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된 이중성(二重城)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사결과 왕궁성을 포함한 삼중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후삼국의 궁예(?~918)가 대동방제국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철원평야 풍천원에 지은 궁예도성은 그 동안 학계의 무관심과 연구부족, 휴전선 한복판이라는 지리적 한계 때문에 학술적 확인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 못했다.
이교수는 궁예도성을 언급하고 있는 세종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중보문헌비고 등 고문헌자료와 1918년 일본이 제작한 지도, 1991년판 군사지도, 1951년과 1991년의 군사 항공사진 등을 참고로 해 궁예도성의 위치를 확인했다.
또 5~8월 4차례에 걸친 현장 답사를 통해 궁예도성의 잔존실태를 파악했다.
지도와 항공사진 상에는 12.5㎞의 외성과 7.7㎞의 내성이 표시돼 있고, 특히 51년 항공사진에는 내성 안쪽에 1.8㎞의 성곽 표시가 나타나 있다.
이 교수는 “내성안의 성곽표시가 왕궁성일 가능성이 높다”며 기존의 이중성론을 뒤집는 삼중설론을 제시했다.
이교수는 답사 결과 “비록 많이 붕괴된 상태이지만 궁예도성 내성(內城)의남벽과 외성(外城)의남벽, 동벽 등은 대체로 그 형태가 확인되고 있다”며 “성은 현무암을 흙과 섞은 형태였으나 전체적으로는 토성(土城)”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날 궁예도성 확인 작업에 관한 사진과 동영상을 함께 발표했으며, 12일 학술제 참석자들과 함께 현장을 답사할 예정이다.
이 교수는 “하루빨리 궁예도성과 도읍지 유적에 관한 남북의 공동조사를 실시해 천년 이상 방치한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학술제 발표논문들
‘태봉의 역사와 문화’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제에서는 80년대 이후 축적된 궁예에 대한 새로운 연구동향이 소개됐다.
조성인 경희대(사학과) 교수는 궁예가 904년 정립한 호족연합세력과의 타협의 산물인 광평성 체제를 변화시킴으로써 신정(神政)적 전제주의를 추구하는 법가적 율령통치를 꾀했다고 말했다.
이재범 경기대(사학) 교수는 궁예가 과도기적 인물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는 중앙집권화 과정에서 호족과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밝혔다.
김두진 국민대(국사학과) 교수는 “신라 하대 선종과 강릉지역 등에서 대두된 미륵정토 신앙은 궁예의 미륵정토사상으로 이어졌다”며 궁예는 허황된 가짜 불교신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장호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궁예도성은 앞으로 태봉도성 또는 풍천원도성으로 불러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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