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슬프도다! 지금 학문하는 사람은 이익과 복록만을 쫓고 있을 뿐이니 오늘의 진정한 선비들은 어디 있단 말이냐."마치 나를 두고 나무라는 말씀 같다.
‘성학십도’ 가운데 이 대목만이라도 깊이 새긴다면 퇴계와의 대화는 성공적인 수준에 이른 셈이다.
‘퇴계와의 대화’를 주제로 안동 강변 축제장에서 펼쳐진 퇴계탄신500주년 기념 세계유교문화축제 개막식에서 어린이 선비단의‘성학십도’ 독송이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종의 충격이었다.
5일 개막됐던 이 축제를 되새김질 하는 것은 이번 축제가 특별했기 때문이다.
아침 9시 퇴계 종택에서 유림의 어른들의 고유제로 개막 의식이 시작되었고 고유제를 끝낸 유림 수백 명은 현양기 100여개를 앞세우고 도산서원으로 30여 분간 걸어가 탄신 500주년을 기념하는작헌례를 올렸다.
뜻 깊은 의례 못지 않게 유건과 도포를 갖추어 입은 유림들의 행렬은 현대인들이 보기에도 장관을 이루기에 충분하였다.
시가 행렬이 개막식장에 들어선 오후 2시 반부터 식전행사가 베풀어졌다.
국악정재 ‘문명의 빛’이 공연되면서 궁중무의 장엄함으로 무대를 수 놓자, 뒤이어 축제의 시작을 하늘에 알리는 고천무가 우렁찬 북 소리와 함께 무대를 울렸다.
유안진 시인이 도산서원 진도문을 나서듯 무대 뒷 쪽의 대문을 열고 나와 축시를 낭송하고, 도산서원에서 채화해 온 성화를 퇴계 종손 이근필과 이의근 경북지사, 공덕무 공자 77세손이 함께 점화함으로써 공식적인 개막식에 들어갔다.
이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진부할 것 같았던 성학십도 낭송이 마치 퇴계를 만난 듯한 감동을 준 덕분에, 축제도 외형적 구경거리가 아니라 알맹이 있는 일깨움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다시 절감했다.
내가 성학십도 낭송을 통해 퇴계와 만남을 이루었듯 세계 각국,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 모두 다양한 행사와 전시를 통해서 저마다 다른 지점에서 퇴계를 만나고 유교문화의 가치를 깨닫는 뜻 밖의 충격들을 경험할것으로 기대된다.
이 축제가 안동에서 열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퇴계 탄신 500주년이라는 역사적 계기와, 유교문화의 전통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안동의 문화역량이 만나서 한국방문의 해 10대 기획축제로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축제를 계기로 한갓 유교문화의 전통 재현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오늘의 유교문화를 어떻게 재창조해 내는가 하는 것을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이 우리의 과제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임재해 안동대 교수 국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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