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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워치] 전쟁의 假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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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워치] 전쟁의 假面

입력
2001.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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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흔히 탈을 쓴다.일찍이 제국주의 열강은 해외 영토와 자원을 노린 식민 전쟁을 문명의 세례를 베푸는 선행으로 미화했다.

두 차례 세계 대전도 평화와 정의를 표방했으나 근원은 세력 균형 다툼과 자원 쟁탈전이다.

냉전 시대 인민 해방 전쟁과 반공 전쟁도 이념의 탈을 쓴 패권 경쟁이 작용했다.

20세기 후반을 지배한 냉전이 끝났을 때 역사의 종말을 선언한 미국 학자가 있다. 이념대결 종식을 언어경제적으로 표현한 재치이거나, 장구한 인류사를 천박한 역사 인식에 녹여버린 치기였다.

그러나 시류에 민감한 지식인들은 말 한 마디로 대박을 터뜨린 것에 시샘을 감춘 채, 이제 강대국의 이념과 이익 다툼은 없고 시대착오적 망나니 국가와 집단을 다스리는 일만 남았다고 덩달아 떠들었다.

잔치가 파하지도 않은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이들은 예언이 적중했다고 환호했다. 그리고 침략 야욕과 독가스와 핵의지로 무장한 악마 후세인을 응징하는 전쟁을 평화와 정의가 지배하는 신국제 질서를 위한 인류 공동의 과업으로 규정했다.

전쟁의 뿌리와 줄기와 열매가 모두 석유라는 검은 이권임을 공연히 호도하는 가면이었다.

10년이 지나 21 세기 첫 전쟁이 시작됐다.

이라크와 비교할 수 없이 피폐한 아프간을 상대한 전쟁이지만, 인류의 공적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란 명분을 내걸었다.

가공할 테러 참사를 목격한 관객은 이번에는 그 가면을 의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도무지 상식과 도리에 어긋난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에도 분명 가면은 여럿 출연한다.

전쟁에 흔한 모략선전이나 심리전이 아니다. 전쟁을 주도하는 미국과 영국은 이 전쟁을 '인도주의 전쟁'’이라고 선언했다.

아프간 공습과 함께 구호식품 상자를 투하한 부시 대통령은 아프간 국민이 미국의 관대함을 알게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미 공군이 투하한 구호식품 레이션은 한 사람이 하루 지탱할 2,200 칼로리 열량의 식품이 담겼다. 그러나 첫날 투하한 레이션 37,000개는 물론, 미국이 보유한 레이션 250만 개를 모두 뿌려도 굶주린 난민 수백 만 명을 구호하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그나마 6,000미터 상공에서 험준한 산악에 흩어질 구호품이 얼마나 난민 손에 들어 갈지 의문이다. 한가한 계산에 앞서, 국제구호단체까지 몰아낸 공습을 인도주의로 포장하는 용기가 놀랍다. 이는 아프간 인을 향한 심리전이 아니다. 국제 사회의 양심을 속이는 위선이다.

가면이 가린 진면목을 밝히려는 관객은 왕따 당하기 마련이다. 중동 석유 이권이 걸린 가면극 걸프전은 미국이 20년 앞을 내다 본 건곤일척의 사업이란 음모론은 공연장 주변 소음으로 치부됐다.

중동 평화와 이라크 국민의 압제 해방 등의 공연 주제와 달리, 평화는 여전히 멀고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이라크 국민이 도탄에서 신음하는 비극성도 외면했다.

그러나 진실을 영원히 가릴 가면은 없다. 무대 뒤에는 늘 진실이 넘친다.

90년대 후반 아프간과 중앙 아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미국은 아프간의 테러리즘 수출을 이라크 등 불량국가의 대량 살상무기 위협과 비슷한 반열에 올렸다.

그리고 러시아와 서구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앙 아시아 국가들을 반 아프간 연대로 묶는 노력을 기울였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등 카스피해 연안 중앙 아시아 국가들과 방위조약을 맺고 합동군사훈련까지 실시하고 있다. 이 연례 CENTRAZBAT 훈련의 주축이 바로 아프간 공격 선봉에 설 제 82 공수사단이다.

무대 뒤 진실은 카스피 해 연안의 막대한 석유 자원과 이를 둘러 싼 열강과 주변국의 이권 다툼이다.

블레어 영국 총리가 어눌한 부시를 제치고 전쟁 명분 설득과 지원에 앞장 선 동기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역사의 종말을 말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사이비 역사가로 매도됐다. 이에 비해 헨리 키신저가 아프간 통과 송유관 이권을 다투는 미국 기업 고문을 맡은 것은 실전 정치학의 대가답다. 그래서 전쟁의 가면극은 끊임없이 리메이크되는 모양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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