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곱던 얼굴 한번 쓰다듬으면 평생 여한이 없을 것 같았는데….”오는 16일 제4차 이산가족상봉 때 103명의 방북자 명단에 포함돼 유일한 생존 가족인 여동생을 만날 꿈에 부풀었던 노용운(盧龍雲ㆍ70ㆍ서울 강북구 미아동)씨는 9일 아침상봉 좌절 통보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북측 조선적십자회가 갑자기 여동생 인순(仁順ㆍ61)씨의 지병이 악화, 혼수상태에 빠져 거동이 불가능하다는 전언통신문을 보내왔기 때문.
“어젠 인순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숨도 잠을 못 이뤘는데 이젠 그 녀석 걱정에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평생 꿈에한 번 나오질 않아 만나면 꾸중하려 했더니 그게 무서웠나….”
4남1녀 중 셋째인 노씨가 가족과 헤어진 것은 한국전쟁 직후. 징병을 피하기 위해 모처에 은신해 있던 노씨가 종전 뒤 다시 찾은 황해도 벽성군의 집은 폭격을 당해 이미 흔적조차 사라졌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어머니는 폭격으로 숨지고 여동생은 남의 집에 보내졌다는 얘길 듣고는반쯤 미쳤었지. 나머지 가족은 찾을 생각도 못한 채 정신없이 남한으로 내려왔던 게야.”
하나뿐인 막내 여동생에 대한노씨의 사랑은 유난히 두터웠다. 노씨는 “고것이 얼굴이 참 곱고 심성이 착해 동네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었어.
방과후엔 ‘인순이가 내 동생이오’하고 자랑하려고 동네방네 업고 다녔었지”라고 미소를 띠다 이내 “그 어린 것이 남의 집에 맡겨져 얼마나 고생을 했을꼬…”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서 통일이 돼 인순이가 좋아하던 사탕과자를 사들고 문병을 가야 할텐데”라고 눈물을 글썽이던 노씨는 “이번 주말엔 임진각을찾아 ‘인순아’하고 큰 소리로 불러봐야 겠구만 ”이라며 애써 서운한 마음을 달랬다.
“아니야, 다시 못 만나도 좋아. 그저 건강만 했으면 좋으련만….
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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