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0월10일 독립운동가 이봉창이 일본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향년 32세. 이의사는 그 해 1월8일 도쿄의 사쿠라다몽(櫻田門)에서 일황 히로히토(裕仁)를향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살해에 실패하고 체포되었다.히로히토는 그 날 만주국 황제 푸이(溥儀) 와 도쿄(東京) 교외에 있는 요요기(代代木) 연병장에서관병식을 마치고 황궁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이의사는 혹독한 조사과정에서 배후 인물인 김구(金九)의 신원을 끝까지 밝히지 않고 가공의 인물 백정선(白貞善)으로 둘러댔다.
비공개 재판이 진행 중이던 7월19일 이의사는 재판관에게 “나는 너희 임금을 상대로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감히 나를 무례히 대하느냐”고 호통을 치며 재판을 거부했다고 전한다.
서울 출신의 이봉창은순국하기 한 해 전인 1931년 중국 상하이(上海)로 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뒤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구의 지시를 받고 히로히토를 암살할 계획을세웠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이봉창이 그 즈음에 자신에게 한 말을 뭉클하게 회고하고 있다.
“제 나이가 31세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고 해도 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 생활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하이에 왔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인1931년 12월13일, 이봉창은 상하이를 떠날 채비를 갖춘 뒤 태극기 앞에서 폭탄 2개를 양손에 쥐고 사진을 찍으며 이렇게 선서했다. “나는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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