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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가을, 왕유의 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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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가을, 왕유의 時

입력
200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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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시인 왕유(王維)가 17세 때 지은 시라고 한다. 시 ‘9월 9일 산둥(山東)의 형제를 생각하다’ 의 뒷부분이다.‘등고(登高)의날’인 이날 그는 풍습대로 산에 올라 머리에 붉은 수유 열매를 꽂으며 생각한다. ‘형과 아우들이 수유를 꽂다가 문득 나의 부재를 알게 되리라.’애상에 젖은 시다. 이 날은 양력으로 10월 중순쯤 되니 지금처럼 가을 빛이 짙었을 것이다.

중국인도 명절 때마다 그리운 가족과 고향을 찾고, 현재는 이산가족이 만나는 행사 ‘탄친(探親)’이 있다.

동양인의 문화적 원형과 저력은 불원천리하고 뿌리를 찾아가는 관습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오랜 농경사회의 유습이며 끈끈한 유교적 가족애의 소산이다.

우리가 어느 날 현대생활의 편안함과 안일에 젖어 번거롭고 힘든 귀성을 외면한다면, 명절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지고 사는 맛은 심심해질 것이다.

농경민의 후예이기 때문인가. 가을 햇볕 속에 벌초를 하면 말라가는 풀의 향기가 진한 향수처럼 옷과 몸에 배면서, 대지와의 친밀감이 온몸으로 전해온다.

풀이 잘린 자리에서는 메뚜기 방아개비 여치 사마귀 같은 풀벌레들이 갑자기 햇볕에 노출되어 이리저리 뛴다.

옛날 고향을 떠나 낯선 도회한 구석에 자리를 잡던 때, 우리 모두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풀벌레 되어 당황했으리라.

사촌 형제들과 어울려 벌초를 할 때처럼 “화장(火葬)을 하자”는 얘기를 꺼내기가 자연스러운 때도 드물다. 벌초가 힘들고 귀찮아서가 아니다. 설득이 일장연설이 될 때도 있다.

“한 집에 선산을 돌볼 사내애가 한 명이거나, 아예 없는 시대가 되었다. 또 아이들이 이민 가는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이제는 아이들의 커서 선산 돌보는 부담을 줄여주어야 한다. 조상을 흙에 모시는 것도 미풍이지만, 국토와 후손을 생각해서 우리 세대부터는 장묘문화를 바꿔야 한다.”

얘기는 가족 납골당 등으로 발전되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생각이 바뀌지는 않는다.내년 벌초 때를 기다려 또 설득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무덤가에서는 아래 마을이 보인다. 그린벨트 안에 있는 우리 마을과, 그린벨트 밖의 이웃 마을이 나란히 있다.

우리 마을은 몇 집이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었을 뿐 큰 변화가 없으나, 이웃 마을은 다세대주택과 상가건물이 들어서 도회 변두리처럼 몰라 보게 변했다.

“저 동네는 버렸어.” 사촌 한 명이 혼잣말을 한다. 때로는 동네 사람들이 그린벨트 정책을 놓고 격한 찬반토론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린벨트가 해제되면 난개발이 범람하고 마침내 동네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점은 모두 공감하는 듯하다.

난개발은 필연적으로 고향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큰 도로와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흐믓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지는 것은 상실감 때문이다.

우리는 빈곤에서 벗어나자마자 풍요를 즐길 겨를도 없이 마구잡이 개발로 고향을 잃어버릴 위기에 놓여 있다.

이 속도로 개발되면 고향이 언제까지 정겨운 이미지로 남아 있게 될까. 고향의 외형은 발전하지만, 마음은 점점 고향을 떠나고 있다. 모두 마음의 실향민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마을이 추억을 떠올려 줄 유년기의 무대를 대부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더없이 다행스런 일이다.

헐벗었던 산하도 여름에는 생명력으로 넘치고 가을에는 넉넉한 양식을 베풀어주고 있다.새삼 사무치는 국토에 대한 고마움 속에, 올해 들판을 바라보는 감회는 각별하다.

남에서는 쌀이 남아 걱정이고 북에서는 모자라 걱정인데, 도와주는 문제조차 갈등을 겪고 있다. 모처럼 황금빛 들판을 바라보며 왕유의 시처럼 형제들, ‘북녘 형제들’을 생각하며 때 아닌 감상에 젖는다.

/박래부 심의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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