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일이…"같은 말이지만 감정은 정반대이다. 하나는 ‘어이없다. 한심하다’는 말이고, 또 하나는 놀라움이다.
‘조폭마누라’(감독 조진규)가 개봉 9일 만에 전국 관객 200만 명을 돌파했다. ‘친구’와 같은 대기록이다.
아무리 한국 영화가 잘 되는 분위기이고, 황금의 추석 연휴이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작품의 완성도나 수준으로 보면 그보다 몇 배나 좋다고 평가 받은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간다’가 있다.
사실 ‘조폭 마누라’는 진지한 영화 관객이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욕설투성이에, 뻔한 상투성. 연기도 서툴고, 황당무계하고 현실성도 없다. 그렇다고 특급 스타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대작도 아니다. 유행의 흐름을 적당히 탄 조폭과 코미디에 액션을 섞었다.
주인공 차은진(신은경)이 언니의 부탁으로 갑자기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려 하는 것들도 설득력이 약하다. 거친 언어는 불쾌감을 준다. 신은경의 중성적 이미지도 새로운것은 아니다.
추석에 마땅히 즐길 만한 다른 오락 영화가 없어서, 마냥 가벼운 것만 좋아하는 관객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최근 한국 영화 시장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 데는 관객의 태도 변화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조희문 상명대 영화과 교수는 “관객은 과거처럼 한 영화에 재미, 예술성, 감동, 메시지를 다 요구하지 않는다. 오락과 예술을 분리해 소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조폭마누라’ 는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오락용으로는 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거기에 몰리는 관객을“한심하다”며 비난만 할 수도 없다. 그들이 바로 ‘공동경비구역JSA’ ‘친구’의 관객이기도 했으니까.
질적인 평가를 떠나 ‘조폭 마누라’에는‘공동경비구역 JSA’나 비슷한 조폭영화인 ‘친구’와는 다른 재미가 있다는 얘기다.
‘조폭 마누라’는 전복적이다. 남성의 전유물인 폭력세계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이를 ‘엽기적인그녀’와 같은 맥락에서 분석했다. “여성 액션, 무기인 ‘가위’가 갖는 거세 이미지 등이 여성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모성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은 결말도 웃음으로 처리해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조폭 마누라’에 아줌마 관객이 몰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조폭 영화 역시 사회현상의 반영이다. “우리사회의 본질이 폭력이라는 자각하면서 그것과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여성(‘조폭마누라’), 학교(‘화산고’), 절(‘달마야 놀자’)에까지 공간을 확대해 유희로 소모하는 사회병리학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심씨는 설명했다.
조금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탈출구가 없는 답답한 사회 현실도 한 몫을 했다. 어느 추석보다 우울한 때에 ‘조폭 마누라’는 세상질서를 살짝 뒤집는 ‘웃음’.
개봉 운도 좋았다. 한국 최대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가 추석 영화로 ‘봄날은간다’를 선택하고 ‘킬러들의 수다’는 2주 뒤(12일)로 미뤘다.
그래서 ‘조폭 마누라’는 추석 연휴에 유일하게 우울한 기분 털고 웃을 수있는 코미디 영화가 됐다.
등급 덕도 봤다. 등급보류 위헌 판결에 따른 느슨해진 등급심의 덕에 ‘15세 관람가’ 를 받았다. 관객의 20%가 고교생들이다.
‘조폭 마누라’는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우연’이나 ‘운’만은 아니다. 대박에는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분명 이유가 있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