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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한국 조폭史 - 일제때 김후옥등 '反日주먹' 첫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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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한국 조폭史 - 일제때 김후옥등 '反日주먹' 첫결성

입력
2001.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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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민(崔炳敏) 서울 은평경찰서장의 논문 ‘한국조직폭력 범죄의 실태와 대책에 관한 연구’와 경찰청 형사과에서 펴낼 예정인 ‘한국 조직폭력 100년사(가제)’ 등 제반 자료에 따르면, 본격적인 의미의 첫 조직폭력배는 일제시대 초기의 김후옥(金厚玉) 김사범(金四範) 등 서울출신 주먹들.일본 상인들이 조선 상권의 중심지인 명동과 종로일대를 장악하기 위해 폭력조직(야쿠자)을 불러들이자 이에 대응키 위해 구마적(舊馬賊), 신마적(新馬賊) 등의 ‘반일 주먹’이 활동한 것도 이때쯤이다.

해방 직후 조직폭력의 세력은 청계천의 수표교를 중심으로 북쪽의 종로일대에는 김두한파,동대문 이정재파, 남쪽의 명동지역에는 서울 시공관 일대의 이화룡파, 중앙극장 일대 정팔파 등이 대표적.

제1공화국 말기에는 정치세력과 연계한 ‘정치깡패’가기승을 부려 이정재 유지광 등 외에도 ‘민중결사대’, ‘백골단’, ‘땃벌레’ 등이 폭력을 일삼았다.

1960년 4.19 혁명 전야3.15 부정선거와 자유당 독재 등에 항거하는 학생 시민 등에게 이정재 휘하의 깡패 100여명이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61년 5.16 구데타후 군사정권에 의해 일시 소탕되거나 잠적했던 조폭들은 63년말 민정이양으로 다시 발흥하기 시작했다.

명동 이화룡밑에서 자란 육군 상사출신 신상현(申尙鉉)이 ‘신상사파’를결성, 100여명의 폭력배들을 거느리고 명동 을지로 충무로 등 중심가를 장악했다.

70년대는 광주 전주 목포 여수 등에서 올라와 무교동에 세력을 구축했던 ‘범호남파’가 서울토박이 중심인 신상사파를 퇴장시키고 ‘중앙’에 진출한 시기. 계기가 된 것이 유명한 75년 1월명동 사보이호텔 커피숍의 ‘조폭 혈전(血戰)’이다.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서방파(김태촌), 양은이파(조양은), OB파(이동재)등 속칭 ‘3대 훼밀리’의 알력과 대립, 발호가점입가경을 이뤘고, 수원(수원파 북문파 등) 광주(신오비파 무등산파 등) 대구(행촌동파 동성로파) 부산(신20세기파 신칠성파 영도파) 등 주요도시별로 조직이 잇따라 결성됐다.

80년 대 말에는 신우회, 호국청년연합회 등의 연합조직이 출현하는 등, 폭력조직의 광역화 현상이 두드러졌으나 90년 ‘범죄와의 전쟁’을 계기로 두목급들이 대거 구속되거나 잠적하면서 거대조직이 거의 와해됐다.

그러나 95년 이후 이들이 잇따라 출소하면서 폭력조직의 재건 및 세력 확장이 시도되는 추세다.

김진각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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