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날에도/ 식지않고 잘 도는 내 피만큼만/ 내가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내 살만큼만 내가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면/ 내 뼈만큼만 내가 곧고 단단한 사람이었으면’( ‘알몸 노래’에서).문정희(54) 시인의 꿈은 소박하다. 그는 더도 덜도 아닌 내 피와 살과 뼈만큼만의 사람을 꿈꾼다. ‘그러면이제 아름다운 어른으로/ 저 살아 있는 대지에다 겸허히 돌려드릴 텐데’라고 소망한다.
문씨가 최근 5년간 쓴 시를 모은 ‘오라, 거짓 사랑아’(민음사 발행)를 읽고 있으면 그가 소망하는 ‘아름다운 어른’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는 스스로의 육체의 피와 살과 뼈만큼만도 못한 존재라는 인식이 뼈아픈 성찰로 다가온다.
그 성찰을 전하는 시력 32년 시인의 말은 그러나 경쾌하고 유연하다. 중년 여인의 발가벗은 듯한 육체의 언어, 혹은 가시돋친듯한 야유의 어조가 오히려 즐거운 시어(詩語)로 변하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다/ 나는 그 호텔에 자주 드나든다/ 상대를 묻지 말기를 바란다/ 수시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러브호텔’에서).
여기까지 읽으면 문시인의 러브호텔은 그대로 우리사회 성풍속의 치부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시는 이어진다.
‘내 몸 안에 교회가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교회에 들어가 기도한다/ 가끔 울 때도 있다/ 내 몸 안에 시인이 있다/ 늘 시를 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아주 드물다’
그의 마음에는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가 공존한다.
한유명 교수의 강연에서 “최근 이 나라에 가장 많은 것 세 가지”가 이것들 이라는비판적인 말을 듣고 문씨는 스스로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본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그는 이 통속의 마음을 정화하기 위한 통행세를 ‘시’라고 밝힌다.
자신이 만난 모든 장미에는 가시가 있었고, 먹이를 물고 보면 어김없이 거기에는 낚싯바늘이 들어있었으며,가족들과 나눠먹은 음식에도 두려운 사약이 섞여있었음을 알게 된 시인은 ‘그래도 시 몇 편을 통행세로 바치고 싶다’(‘통행세’에서)고 말한다.
그의 새 시집에 실린 시편은 바로 이 거짓 사랑의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밤새 뼈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언어로 지불할 것을 결심한 통행세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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