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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재벌정책 고삐 풀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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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재벌정책 고삐 풀 때 아니다

입력
2001.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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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는 98년의 상호지급보증 금지, 결합재무제표 작성을 통한 투명성 제고, 재무구조 개선, 핵심사업으로의 집중, 지배주주의 책임 강화 등 5원칙에 지난 99년 3원칙을 추가하면서 재벌의 순환출자와 금융지배를 억제하겠다고 재벌정책을 선언했다. 이 때문에 1998년 슬그머니 페지되었던 출자총액한도제가 올해 다시 부활되었다.그러나 출자한도 초과분 해소 시한을 몇 달 앞두고 다시 이 제도를 사실상 폐지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다. 물론 전경련의 끈질긴 요구에 밀린점을 모르는 바 아니나 98년에는 구조조정때문에, 이번에는 경기부양을 구실삼아 이를 폐지하기로 한 것 같다.

재벌의 은행소유도 의결권 제한을 조건으로 현재 4%에서 10%로 상향 조정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정부가 스스로 정했던 5+3이라는 중요한 재벌정책의 원칙 2개가 갑자기 충분한 이유도 없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총액출자한도제가 폐지된 98년 이후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불과2년 사이에 재벌들의 증자가 봇물 터지듯 일어났다. 타 회사 출자 총액의 비중이 27%정도이던 것이 99년에는 32%로 늘어났다.

그 중에는 이미 도산한 대우의 확장투자나 부실로 밝혀진 현대의 확장투자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들의 증자는 부채비율 200% 목표를 달성하는데 부채를 줄이기보다 분모인 자산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그 결과 부실을 키워 그룹자체의 도산이나 해체는 물론이고,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을 다시 누적시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게 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결과를 놓고 재벌그룹의 타회사 출자 제한제도를 2001년부터 다시 부활시키기로 여야 재계가 만장일치로 합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부활되자 마자 경기회복과 규제완화를 내세워 이제도의 폐지를 요구한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하여 출자제한을 푼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사업전망이 없어서 투자를 아니하는 것이지 출자규제 때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부분에서 과잉투자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실제로는 재계가 이미 투자한 한도 초과분 해소 부담을 제거하려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총액출자한도제는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다고 하나 미국 영국 등 기업은 자사의 증자에 관심이 있지 타 회사에 출자하지 않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다.

일본과 독일은 타 회사 출자가 있다. 일본은 이를 100%로 억제하고 있다. 게열사간 상호출자가 허용되고 있는 이들 나라에서 경영의 비효율이 나타나고 있다. 상호출자로 부실계열사를 지원함으로써 비효율적인 부분에 과잉생산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이것이 장기불황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한번의 실수는 인정된다 해도 동일한 실패를 거듭하는 것은 만용이거나 바보나 하는 짓이다. 총액출자한도제는 장차 시장규율이 바로 서면 없어질 제도이다. 이점에 대하여 나는 동의 한다. 그러나 아직 그 시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시장의 내외 규율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이 자율성을 확보하여 기업을 모니터링할 수 있고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매매가 자유롭고 기업의 주주와 이해관계자가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지배구조가 마련될 때 기업의 내부와 외부의 시장규율이 바로 섰다고 할 것이다.

재벌에게 금융기관의 소유까지 허용하게 되면 이제는 금융기관까지 그룹에서 운영하게 되어 자율성은 더욱 위축될 것이 자명하다. 선진국에서는 금융기관이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일정 한도내에서 허용하지만 기업이 금융기관에 투자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아직은 재벌의 총수와 그룹의 경영전횡이 여전하며 소액주주의 권한이 재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은행의 자율적 기업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것들이 제대로 마련되어 시장이 자율적으로 규율해 나갈 때까지 일정기간 타회사 출자 제한제도는 유지되어야 한다.

/강철규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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