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의 구조조정에 속도를 붙이기 위해 마련된 구조조정촉진법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섰다. 촉진법은 물 밑에서 회유와협박을 섞어가며 암암리에 진행되던 기업구조조정을 수면 위에서 룰과 절차에 의해 이뤄지도록 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신약(촉진법)의 효능을입증하게 될 첫 시험대에 선 기업은 하이닉스반도체, 쌍용양회, 현대석유화학. 과연 이들 기업이 신약의 우수성을 입증하며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것인지,아니면 마루타로 전락하고 말 것인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부실 3사 잇단 촉진법적용
9월14일 발효된 촉진법이 적용된1호 기업은 현대석유화학. 투신권이 5,610억원의 회사채 만기 연장을 거부하자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은 지난달 27일 촉진법을 적용, 1개월간모든 채권행사를 동결시켰다. 채권단은 11일께 전체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열고 4,000억원 출자전환, 1조9,000억원 채권 3년간 만기연장 등정상화방안을 표결에 부친다.
쌍용양회의 경우 채권행사 유예 결정은 현대유화보다 늦은 지난달 28일 이뤄졌지만 경영정상화 방안 확정을 위한 전체채권금융기관 협의회는 가장 이른 5일 개최된다. ▦전환사채(CB) 1조7,000억원 조기 주식 전환 ▦은행권 무담보 여신 1,500억원 1% 금리CB 전환 ▦2,000억원 5년간 신규지원 ▦2금융권 보유 여신(4,300억원) 금리 인하 ▦투신권 보유 회사채 3,900억원 3년간 차환발행등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결의할 예정이다.
하이닉스반도체 채권단도 4일 회의를 열어 3개월간 채권행사를 유예키로 결의했다. 통상 촉진법상 채권행사 유예기간은1개월이지만 안진회계법인의 실사를 이유로 3개월의 시간을 확보한 것. 출자전환 등 기존 채무재조정과 함께 1조원 신규 지원, 5,000억원 유상증자,신용보증기금 보증부 회사채 5,000억원 신규 발행 등을 추진중이다.
▽촉진법 적용 성공할까
촉진법의 성패는 사실상 하이닉스에 달렸다고 해도과언이 아니다. 쌍용양회와 현대유화의 경우 사전 조율을 통해 의결정족수인 75%를 채우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예상된다. 하지만 촉진법 시행전 5,000억원 신규지원안이 부결된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우 신규지원 규모가 오히려 1조원으로 늘어나 75% 이상의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
채권행사 유예기간(3개월)이 끝나도록 정상화 방안을 확정짓지 못할 경우 남는 선택은 법정관리 뿐.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이에 대비해 일단 서둘러 안건을 표결에 부친 뒤 부결될 경우 수정안을 재상정하는 것을 검토중이지만 금융기관 내에 하이닉스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3개사의 경영정상화 약정이 체결된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반대 의견을 낸 금융기관이 정상화방안에 동참해주면다행이지만 보유 채권에 대해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갖은 잡음이 생길 수 있다. 청구 가격을 둘러싸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불가피한데다 조정위원회의조정까지 실패할 경우 법정으로 가야한다.
또 아예 채권단 결의를 거부하는 ‘간 큰’ 금융기관에 대해 제재조항이 없다는 점도 약점이다. 이성규(李星圭)CRV설립사무국장은 “결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채권단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밖에 없지만 손해 규모 산정이 쉽지 않아 논란이예상된다”며 “투신권의 경우 고객의 자산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게 정당한 것인 지 여부도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촉진법 뭐가 다르나
구조조정촉진법은 제2금융권 등 일부 금융기관의 반대로 기업구조조정이 지연되고 무임승차(Free Ride)하는 금융기관을막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골자는 채권금융기관의 75% 이상(총 채권액 기준)이 정상화 방안에 동의하면 나머지 금융기관도 이에 따르거나 반대매수청구권을행사해 협의회에서 아예 빠지도록 한다는 것. 그동안 몇몇 금융기관이 정상화방안에 끝까지 반대할 경우 시간만 질질 끌다 결국 주요 금융기관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모든 부담을 떠안는 상황이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촉진법은 전체 채권금융기관의 50% 동의로 1차 채권금융기관협의회 소집일까지, 75% 동의로 최장 3개월(추가로1개월 연장 가능)까지 채권행사를 동결시킬 수 있도록 했다. 75% 동의를 얻지 못해도 이전에는 계속 안건을 수정해가며 재상정할 수 있었지만 촉진법아래에서는 채권행사 유예기간이 끝나면 법정관리나 화의로 진로를 바꿔야 한다. 그만큼 기업의 생사(生死)가 신속히 결정된다.
촉진법 적용 대상은 금융기관 신용공여액(여신액) 500억원 이상인 기업이지만 ▦전체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 ▦채권은행공동관리 ▦주채권은행 관리 등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촉진법 역시 위헌 논란에 부딪혀 강제성을갖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채권행사 유예, 정상화방안 등의 결의에 일부 금융기관이 따르지 않더라도 별도의 제재조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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