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한중 양국 방문이 성사된 데 대해 일본정부는 크게 안도하고 있다. 역사교과서ㆍ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로 냉각된 관계를 곧바로 회복시킬 수는 없겠지만 8월 이후 단절된 대화가 재개된 것만도 절반의 성공이기 때문이다.일본 외무성에선 양국과의 긴밀한 민간ㆍ경제 관계로 보아 일단 대화의 물꼬만 트이면 어렵지 않게 관계가 회복되리라는 낙관론도 무성하다.
일본 정부는 고이즈미 총리가 상하이(上海) 아태경제협력회의(APEC)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과 어색하게 만나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사전 정상회담을 추진해 왔다. 이에 대해 한중 양국 모두 앞으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없는 한 응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한중 양국의 태도에는 상당한 강도 차이가 있었다. 8월13일의 참배에 대해‘최소한 8월15일은 피하라’는 요구가 반영됐다고 보는 중국은 한결 부드러웠다. 역사교과서 문제를 ‘미해결의 현안’으로 삼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재수정 요구가 거부된 이후 교과서 문제에 대한 직접 언급은 피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먼저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태도를 표명하고 내년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신중히 검토한다”는 뜻을 물밑으로 전해 중국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 다음에 일본측은 중국의 태도변화를 한국 정부를 설득하는 데 활용했다.
테러 보복 공격을 앞두고 미일 공조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미국 카드도 동원됐다. 미국측은 자위대의 인도양 파병 등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태도가 중요한 열쇠라는 점에서 한국측에 일본과의 대화를 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일본측은 교과서ㆍ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현상 변화’ 없이 외교적 수단으로 한일정상회담을성사시킨 셈이다. 이번 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과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단순한 전몰자 추도라는입장을 거듭 해명할 방침이다.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도 현행 교과서 검정제도의 틀안에서 최대한의 배려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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