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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황후 시해는 국가차원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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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황후 시해는 국가차원 테러

입력
2001.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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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마천루, 두 채의 세계 무역센터 건물이 테러에 의해 폭삭 주저앉은 사건으로 전 세계가 시끌벅적하다.며칠 후면 명성황후 서거 106주기를 맞게 되는데 이런 때에 명성황후의 암살을 논한다는 것은 실로 의미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100여 년 전에 일본이 관-군-민 합동으로 우리의 국모를 일본도로 세 번이나 쳐서 암살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테러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필자는 ‘명성황후 사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모 일간지의 기사를 보고, 소장하고 있는 고서(古書) 안에 명성황후 사진을 근거로 한 삽화가 있었음을 밝혔는데 그 주장은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반면 이 책에 쓰여진 ‘한국 왕비의 암살’ 현장 견문기를 번역하여 한 월간지에 발표했는데 아직까지 별 반응은 없다.

그러나 이 글에는 명성황후의 시체 처리에 관한 놀랄 만한 이의가 제기돼 있다.살인자들은 명성황후의 시체를 ‘기름을 부어 태워버렸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말뿐이지 뚜렷한 증거도 없다.

이 고서의 저자는 일본 군대가 호위하는 마차가 궐문 밖으로 운구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이것이 왕비의 시체가 아니겠는가’라고 분명히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필자 역시 일본 무사도의 전통적 방식에 따르면, 또한 일본 역사의 실제를 보더라도,전쟁에서 이기면 적장의 머리를 상자에 담아 승리군의 대장에게 바쳐 검증을 하는 것이 상례이므로 명성황후의 시신도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살인자들이 자랑삼아 한 말만 믿고 시체처리 과정을 너무 등한시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필자는 여기서 명성황후의 암살로부터 아관파천까지의 노정을 적고 있는 이 고서와 저자의 견해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은 1898년 파리에서 출간된 ‘한국, 독립인가, 러시아또는 일본의 손에 넘어갈 것인가’라는 제목인데 필자가 파리 유학 시절 발견해 소장해 온 것이다.

저자인 빌따르 드 라게리는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 땅’의 특파원으로 청일전쟁에 종군했다가 1895년 3월 3일 제물포항에 도착, 약 1년 동안 우리나라에 머물렀다. 그는그 동안 견문한 것을 귀국 후 책으로 엮어냈다.

이 책은 머리말과 맺음말, 그리고 본문(4부)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그 동안의통설은 명성황후 암살의 참극과 아관으로 파천까지 하는 고종의 무력함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비해, 이 책은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첫번째로 명성황후의 정치적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드 라게리는 ‘오직 민왕비 한사람만이 실제로 조선의 전민적인 정책을 구상했으며 오로지 민왕비 한 사람만이 왕에 대해 충분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고보았다.

왕비가 사라진 뒤의 조선은 ‘마치 트럼프 카드로 만든 집처럼’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고 묘사하고 있다.

둘째로 드 라게리는 아관파천을 극동의 한국문제가 민족 내부적 단계에 종지부를찍고 국제적 단계로 넘어가게 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명성황후의 암살과 더불어 한국의 국가주권의 실체가 공동화 (空洞化)됐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준희 전 건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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