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환갑인 의사가 연극 무대에 섰다. 한양대 의대 소아과 교수이자 소아암 백혈병 전문의인 이항 교수다.지난 한달 동안 극단 한양레파토리가 서울 ‘유시어터’에서 공연했던 미국 작가 AR 거니의‘러브 레터’에서 주인공 앤디 역을 맡았다.1995년 국내 초연돼 6개월간 장기 공연됐던 작품이다. 8살에 처음 만나 친구가 된 두 남녀가 평생에 걸쳐 주고 받은 편지를 서로 이야기하는내용이다.
■그는 순수 아마추어다.지난 60년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연극을 시작했고, 그 동안 연극을 좋아하는 고교 동문들의 모임에 꾸준히 참여했지만, 실제로 배우가 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교수가 직접 무대에 오른 이유는 간단하다.
매일 얼굴을 맞대는 어린이 환자, 그것도 좀처럼 치유하기 힘든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의사보다는 그 이상 뭔가 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연극을 생각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연극을 통해 어린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백혈병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자신이 변해야한다. 그 방법을 연극에서 찾았다.의사와 배우는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연극을 하면서 느낀 희열, 그 감동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아이들을 대하면 좀 더 따뜻한 마음이 될 수있을 것 같았다.
이번 공연에서 얻는 수익금의 일부를 소아과 백혈병 환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키로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추석 연휴 기간동안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어느새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노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는 말에 놀라면서 서로를 돌아보아야 했다. 이제는 정년 퇴직 후에도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연극을 하는 이 교수는 특별한 경우에 속하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찾아보면 뭔가는 있을 것이다. 삶은 길어지고 있고, 이를 앞으로 어떻게 보람있게 보낼 것인가는 노령화 사회에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연휴 이후 차분히 ‘고민’해 볼 숙제다.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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