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생각] 한가위, 버릴 것 얻을 것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생각] 한가위, 버릴 것 얻을 것

입력
2001.09.29 00:00
0 0

사람사는 세상에 조용하고 편한 날이 드물지만, 요즈음은 특히 국내외가 부산하다. 뉴욕 비행기테러 사건과 뒤이은 미국의 보복전쟁 이야기로 해외가 시끄럽다면 ‘이용호게이트’로 국내 역시 조용하지않다.‘이용호 게이트’엔 경찰 금융감독원 검찰 등 공권력이 관련돼 있고, 억대의 로비자금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힘없는 서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뉴욕 테러 못지 않은 것 같다.

두 사건이 우리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크다. 공통점은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인과(因果)라는 점이다.‘비행기 테러’는 자신을 편하게 할 목적으로 자신(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가, 역으로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비행기를 폭탄처럼 이용한 테러범의 발상은 인류문명이 걸어가고 있는 위험한 행보를 극적으로 보여준 것은 아닐까. 비행기를 개발해낸 문명이 테러를 야기했다고 하면 논리의 비약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좀더 편한 것을 원하는 우리의 욕심이 커질수록 이를 미끼로 이익을 취하는 부분도 생긴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용호 게이트’ 역시 인간 생활에 있어 ‘금전(金錢)’이 얼마나 인간관계를 ‘악의적인 그 무엇’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중생계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사건에는 이처럼 욕심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 같다.

불교는 전통적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중생은 탐ㆍ진ㆍ치 세 가지로 인해 괴롭게 된다고 가르친다. 이를 삼독(三毒)이라고 한다. 욕심내고,성내고, 어리석은 삼독이 ‘마음의 눈’을 가려 본래 부처인 우리, 본래 정토(淨土)인 이 세상을 망치게 만든다.

마음을 가린 삼독, 삼독만 완전히 제거해 버리면 마음의 눈은 저절로 밝아진다고 불교는 강조한다. 삼독 중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바로 탐욕이다. 욕심내는 마음이 근본이 돼 성내는 마음도 생기고, 어리석은 마음도 생긴다. 쉽지는 않겠지만, 탐욕만 근본적으로 제거해 버리면, 마음의 눈은 자연적으로 뜨게 돼있다고 부처님은 가르치셨다.

탐욕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가. ‘나’라는 것 때문에 생겼다. ‘남이야 죽든 말든 알 턱이 있나, 어떻게든 나만 좀 살자, 나만!’ 하는 데에서 모든 욕심이 생겨난다. 모든사건의 화근(禍根)은 ‘나’와 ‘남’을 달리 보는 생각이다.

과학이 채 발달하기 전,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공전한다고 믿었던 것처럼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여주길 바란다. 바로 이 ‘나’를 죽이면 세상이 화평한데, ‘나’를 없애기가 쉽지 않다.

달리 보면 쉬울 수도 있다. ‘나’라는 욕심을 잠시 버리고, ‘남’을 위해 살면 ‘나’는 점차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마음의 눈은 저절로 밝아지고, 세상도 환해진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나를 없애는 가장 빠른 길이다.

일 년 동안 기른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님께 차례 지내고, 이웃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겁게 보내는 날이 바로 추석이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한다.

가족과 친지가 모이는 이번 추석에 ‘나’를 죽이는 실험을 해보자. 생판 모르는 남들에겐 잘해주기 어려워도, 가족과 친지에게 잘해주긴 아무래도 쉽기 때문이다.

명절이 악몽이라는 며느리들을 도우러 시누이, 남편들이 부엌으로 가자. 한가하게 연휴를 즐기고 싶더라도 TV를 끄고 아이들 손을 잡고 시골의 가을풍경을 구경나가자. 그 마음에는 ‘나’와 ‘남’이 아니라 함께 하는 ‘우리’가 있다.

가족과 친지에게 기울인 정성을 고향 갔다 돌아오는 귀성차량에 고스란히 담아와 우리 사회에 뿌려보자. 그러면 그 ‘상생(相生)과 평화의 자세’는 결국 나에게 돌아올 테니까 말이다.

지홍스님 조계사 주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