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한 작품을 36회 공연한다? 이만한 장기공연은 외국서도 보기 힘든 이례적인일이다. 객석 채우기도 힘든 국내 무용 현실에서 36회 공연은 무모한 모험에 가깝다. 가장 인기있는 연말 발레 ‘호두까기인형’도 많이 해봤자 10여회다.민간 직업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가 이 위험한 도박을 시작한다. 상임안무가 제임스전(43)의 신작 ‘창고(Warehouse)’를 한전아츠풀센터에서 10월 6일부터 11월 4일까지 총 36회 공연한다. 이 단체는 5년 전 소극장 두레에서 소품으로40회 공연한 적이 있다.
그때는 200석의 작은 공간이었고, 이번엔 1,200석의 큰 극장인데다 공연시간 90분의 대작이다. 국내 발레 안무의독보적 존재인 제임스 전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만드는 야심작이다.
작품명 ‘창고’는추억의 창고를 가리킨다. 1970~80년대에 까까머리 고교 시절과 청년기를 보낸 평범한 남자가 돌아본 우리 시대자화상이다.
“재미있게 만들려고 했다”는 이 작품에서는 만원 통학버스, 교복, 빵집, 미팅,극장, 첫 키스, 군대, 데모, 디스코텍, 이별, 홍등가, 결혼 등 386 세대의 추억이 무대 위에 되살아난다. 당시를 풍미한 가요, 팝부터 클래식,국악, 재즈 등 다양한 음악이 창고를 가득 채운다.
공연을 앞둔 제임스 전은 비장한 표정이다. 전례 없는 모험을 저지르면서 긴장과걱정으로 밤을 샌다는 그는 “이 작품은 나의 또다른 분신”이라며 강한 애착을보이고 있다.
유머와 액센트를 적절히 배치해 작품을 구성하는 그의 안무력은 정평이 나 있다.발레 동작을 기본으로 현대무용이나 좀 더 자유로운 극적 표현까지 다양한 춤 언어를 구사해 바로 오늘의 이야기를 다루는 그의 작품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관객 속으로 강하게 파고 든다.
현대 젊은이의 방황을 그린 록발레 ‘현존’ 시리즈를 비롯해 흘러간 대중가요로 만든 ‘상하이의 별’, 기발한 상상력이 빛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그의 작품들은대중적인 인기와 예술성 양쪽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총 35명이 출연하는 이번 공연은 서울발레시어터의 스타로 활동하다 잠시 다른단체로 옮겼던 정운식과 로돌포 파텔라의 귀향 무대이기도 하다.
주역은 정운식-박아영-윤미애, 나인호-조현경-전선영의 두 팀이 번갈아 맡는다. 평일오후 8시, 주말 오후 3시ㆍ7시, 월 쉼. (02)582-9498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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