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의 연쇄 테러공격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보복 작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미국은 빈 라덴과 그의 추종세력을 테러범의 배후로 지목하고 그를비호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최후 통첩을 보냈다. 테러집단의 색출과 처단, 비호국가 응징 및 정권 축출이 이번 대테러전쟁의 1차 목적으로 설정되었다.이번 대테러전쟁은 강한 명분이 있다. 미국은 국제법적으로 테러 학살에 대한 전세계국가들을 상대로 미국 편이냐, 테러세력 편이냐를 선택할 것을 요구했다. 이미 많은 국가들이 이번 테러 사태의 충격과 공분의 차원에서 대미 협조와 지지를 약속했다.
서유럽 동맹국들은 처음으로 북대서양조약 5조의 공동대응 조항을 적용하기로 했고, 일본도 발빠르게 자위대 파견 등 지원 조치를 제시했다. 우리도 한ㆍ미 동맹의 정신에 따라 미국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탈냉전 시대의 국제적 해원(解寃)까지 추구하는 듯 하다. 부시 정부 출범 이후 미사일방위(MD) 등 일련의 강경외교정책에 반대해 온 러시아도 제한적이나마 대미 협조 의사를 밝혔다. 구 소련의 중앙아시아 회교국들도 대미 지원 입장을 밝히면서 아프간 공격기지도 제공할 태세다.
중국 역시 일부 우려의 눈길을 보내면서도 비슷한 입장이다. 1998년 핵실험 이후 국제 제재를 받던 파키스탄과 인도는 거의 경쟁적으로 대미 지지의 대열에 섰다. 특히 파키스탄은 국내 회교도의 기대, 그리고 탈레반 정권과의 기존 유대관계도 저버리며 실리를 택했다.
대테러전쟁에 대한 국제적 공조는 미국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전쟁 자원이다. 당장 이를 통해 미국은 공격 전진기지의 확보, 공동 군사행동을 위한 군사력보강, 전비의 공동 부담을 위해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특히 이 같은 공조는 이 전쟁이 자칫 회교권과 미국과의 ‘문명 충돌’로비화되지 않도록 하는 나름대로의 안전판 역할도 해 준다.
사실, 이 전쟁의 주변국들은 외부 회교세력에 대한 견제(중국,러시아, 인도)뿐 아니라 회교내 반대세력에 대한 거부(중앙아시아 회교국, 이란)의 차원에서 행동 방향을 정했으며, 이 점에서 전세계 회교권의 단일 행동의 가능성은 이미 크게 낮아졌다.
미국을 선두로 한 국제적 공조는 테러피격으로 실추된 미국의 위상을 제고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미국은 이 전쟁을 ‘21세기 최초의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매우 적극적인 대응을 추진하고 있으며,이를 통해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하고자 한다. 대테러전쟁이 미국의 희망대로 종결된다면, 미국은 걸프전쟁 직후의안보적 위상을 다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불량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를 활용한 국가테러리즘 가능성을 제지하면서 미사일방어까지 밀어부칠지 모른다.
그렇지만, 미국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테러리즘의 박멸을 위한 이 전쟁은 장기간에 걸쳐 수행될 것이며, 여기에는 테러와는 다르지만 비정규전수행에 따른 ‘추악한 전쟁’(dirty war)도 수반될 수 있다.
파키스탄 등인접 국가, 이라크 등 다른 중동 국가로 전선이 확대될 수도 있고, 미국의 무차별적 공격에 민간인 희생이 확대될 경우 중동의 반미 여론이 폭발할수도 있다. 또 전장에서 미군 희생자가 다수 발생 할 경우 미국 내부에서도 과거 베트남전쟁처럼 전쟁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비판론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요컨대 이 전쟁은 제대로 이루어지면 미국이 탈냉전 신세계 질서의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고삐를 한 번 더 움켜쥐는 기회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극적인 반전의 위험도 품고 있는 함정이 될 것이다.
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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