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윤성희(29)씨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불렀다. 1999년 처음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한 소설이 ‘덜컥’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으며, 현대문학사가 기획하는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로 2년 잇달아 뽑혔고, 지난해에는 한국일보문학상의 본심 추천작으로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다.
만 서른이 채 안된 등단 3년차의소설가가 이처럼 화려하게 주목받기란 확실히 드문 일이다. 그래서 그의 첫 소설집 ‘레고로만든 집’(민음사 발행)의 출간 소식은 어느 때보다도 반갑다.
문학평론가김병익씨는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을 ‘콤플렉스가 없는 세대’로 일컫는다. 전쟁에 대한 공포도,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도, 유신과 신군부 독재같은 체제에 대한 저항의식도 없는 세대.
‘결핍’에서 문학의 모티프를 건져 올렸던 선배 문인들이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켜보는 후배들이다. 이런 선배들의 의구심에 대해 70년대생 작가 윤성희씨가 내놓는 답은 무엇일까.
여성이화자로 등장해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품은 90년대 이후 한국소설에서 익숙한 것이 돼버렸지만, 윤씨의 소설에서 그들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윤씨의 주인공인 여자들은 “잃어버렸던 나의 정체성을 찾아야해”라고 외치지도 않고, “제발 나의 아픔을 들어주고 이해해 줘”라고호소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 앞에 선다. 윤씨가 세상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단편 ‘레고로 만든 집’에서 화자는 복사기 화면에 얼굴을대고 복사 버튼을 누른다.
복사된 얼굴은 놀란 표정이고, 초라하게 보인다. 여자가 복사한 자신의 얼굴에는 ‘미처 몰랐던 나’가 들어 있다.
이렇듯복사기로 치환된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은 그의 다른 작품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윤씨는 ‘이방에 살던 여자는 누구였을까?’와‘서른 세 개의 단추가 달린 코트’라는 두 단편에서 ‘은오’라는 이름의 여자를 등장시킨다.
이 여자는 정확하게 말해 소설에서 ‘사라진 상태’로 등장한다. ‘이 방에…’에서 은오가 살았던 방에 이사 온 화자는 이웃들에게서 자신과 닮았다는 은오로 오해받는다.
‘서른 세 개의…’에서 또 다른 화자는 실종된 은오의 수첩에 별달리 친하지도 않았던 자신의 연락처가 적혀 있다는 소식에 당황한다.
두 단편에서 화자는 사라진 은오의 스웨터를 입고 은오의 반지를 찾아내며, 은오의 코트를 넘겨받고, 은오의 버릇을 흉내낸다.
단편 ‘모자’에서 E는 헤어진 친구 H의 생일을 자신의 것인 양 빌린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흔적을 따라가는 길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순간과 만나게 된다.
가족을부양해야 하는 심란한 가난이나, 낳아준 사람에게서 버려졌다는 고아의식도 어쩌면 우리 소설에서는 진부한 소재다.
그러나 윤씨 소설이 다른 ‘진부한’ 작품과구별되는 부분은, 그런 소재가 내면과 마주하기 위한 모티프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먼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기로 한 뒤, 내면의방황을 강화하는 계기로서 작용한다.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는 소외와 고립의 감정으로부터 나오고, 이런 감정은 가난이나 고아의식에서 비롯되는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씨 스스로도자신의 소설이 “고루하다”고 했다. 2000년대라는 시대에 진부한 소재나 화려한 미사여구가 없는 문체, 진지하게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은 고루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고루함을 작품의 특수성으로 삼는 젊은 소설가는 드물다. 그래서 젊은 작가윤씨의 소설은 주목할 만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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