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시집이다. 똑같은 글자만 나열하면서 시 전체를 삼각형 모양으로, 또 마름모꼴 모양으로 만든다.‘미음’이라는 제목의 시는 단어 ‘미음’을 사용해 시를 자음 ‘ㅁ’ 모양으로만든다. 시의 깊은 의미와 시어의 아름다움을 탐구해온 한국 시단에서, 이같은 시작(詩作)은 분명 ‘별난’ 것이다.
고원(50ㆍ사진) 서울대 독문과 교수가 펴낸 두번째 시집 ‘미음 속의 사랑’(이슈투데이 발행)은 이런 실험으로 가득 차 있다.
고교수는 자신의 시를‘한글 구체시’라고밝혔다. ‘구체시’란 “문자의 꼴과 소리를 부각시키면서문장의 가장 작은 단위인 단어, 음절 등을 빌려 독자와의 소통을 촉발하는 표현방법”이라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가 구체시 실험을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다.
이미1960~70년대에 독일어권 문학에서 기존의 제도권 문화에 반기를 들면서 형성됐던 실험적인 예술양식이다.
“한글은 단순하면서도 조형성이 뛰어난 문자이기 때문에 구체시로 발전시키는 데 적격”이라고 고교수는 말한다.
‘못대가리’라는 제목의 시는 못대가리를 닮은 모음 ‘ㅜ’만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아주머니를 위한 예쁜 십자가’에서는 낱말을 배열해 십자가모양을 만들어낸다.
지은이의 시적 자의식이 드러나는 부분은 시 ‘자화상1’이다. ‘나는서울대교수입니다’로 시작하는 시는 의도적인 띄어쓰기의 잘못으로 ‘나는서울 대교 수입니다’로, ‘나는 서울 대교 미입니다’ ‘나는서울 대교 위입니다’ 등으로뒤틀린다.
‘나는 서울대교수밑입니다’ ‘나는 서울대교수뒤입니다’ 등으로 변주되다가 ‘나는서울대 옳은교수입니다’로 끝난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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