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3년 9월24일 스위스의 의학자 겸 화학자 필리푸스 아우레올루스 파라셀수스가 아인지델른에서 태어났다.1541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몰(歿). 파라셀수스는 바젤 대학과 페라라 대학에서 공부한 뒤 1526년 바젤시의 시의(市醫) 겸 바젤대학 교수가 됐다.
그러나 의학에 대한 그의 생각이 너무 혁신적이어서 두 해 뒤 그 도시에서 추방당했다.
파라셀수스는 흔히 마지막 연금술사이자 최초의 화학자라고 불린다. 그는 또 의학에 화학적 개념들을 도입한 의화학(醫化學)의 원조이기도 하다.
중세의 어둠이 걷히지 않은시기를 산 파라셀수스는 어쩔 수 없이 점성술이나 연금술을 자기 의학의 한 뿌리로 삼고 있었지만, 그런 한편 전통에 매이지 않고 실험을 통해 많은 의약품을 만들어냈다.
산화철 납 구리 수은 안티몬 비소 등의 금속들을 의약품의 원료로 처음 사용한 것이 파라셀수스다. 그런 점에서 그는 근대 약학의 아버지라고도 할 만하다.
파라셀수스의 말 가운데약학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것이 있다. “세상의 모든 약은 독이고 약과 독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그 사용량일 뿐이다”라는 말이다. 약의 치료효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독성이라는 것을 강조한 이 말은 약리학이 곧 독성학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는 또 수은 유황 소금의 셋이 물질계의근본이라는 ‘3원소설’을 주장했다. 그것은 파라셀수스가 연금술의 자장(磁場) 안에서 근대 의학을 개척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연금술은 비금속(卑金屬)을귀금속으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기원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돼 이슬람세계에서 체계화된 뒤 중세 유럽을 풍미한 이 이론체계는 그 주술적 성격 때문에 참다운 과학이 되지는 못했지만, 숱한 시행착오의 과정 속에서 화학이라는 진짜 학문을 낳았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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