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하나로 된 물건을 둘 이상으로 나누다. 조각이 나게 부수거나 가르다.(동아 새국어사전)■새 정의: 싱겁게, 살살 웃다
■용례: “쪼개지 마. 이빨 보인다.”
회사원 최모(48)씨는 최근 지하철에서 젊은 남녀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말했다. “야 너 쪼개지 마.
죽~어.” 실실 웃고 있는 남자에 대한 여자의 역정. 최씨는 ‘쪼개다’라는 듣기 거북한 느낌의 말에도 별로 화를 내지 않는남자의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자신의 세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에게 외친 “쪼개지 마”라는 말은 ‘싱겁게 웃지 말라’는 의미. ‘조각이 날 정도로 부순다’는 뜻의 ‘쪼개다’가 억센 어감 탓인지 새로운 방향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쪼개다’는 주로 힘이 센 자가 약한 자에게 위협을 가할 때 써왔다. 그래서 권력과 힘을 중시하는 남성들 사이의 대화에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단어였다.
남성성이 가장 강조되는 사회 중 하나인 군대에서 고참병들이 기합을 줄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이빨 보인다. 쪼개지 마.”
이제는 “쪼개지 말라”는 말이 여성들의 입에서도 쉽게 나오고 있다. 대상은 남성이다. 남성 중심의 세상, 남성성만이 우선시되는 세상이 변화 발전하고 있는 것일까?
이화여대 여성학과 허라금 교수는 “남녀간의 성(gender) 역할을 분리하고 있던 경계선이 흔들리며 이제는 더 이상 ‘여성스럽다’는 말로 여성의 정체성을 규정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며 “‘쪼개다’의 화자가 누구인지 따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흥행 성공도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남녀관계를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보자. 영화 전체와 남자친구를 지배(?)하는 ‘그녀’가 휘두르는 주먹. 뒤이은그녀의 한 마디.
“너 죽~어.” 여성관객의 폭소가 커진다. 남자친구는 멍든 얼굴로 그녀를 따라간다. 하지만 그녀가 밥을 사 주자웃기 시작한다.
감독의 상상력이 조금만 더 미쳤더라면 아마도 이런 장면이 추가됐을지 모른다. 웃기만 하는 남자친구에게 “쪼개지 마”라고 외치며 또다시 주먹을 휘두르는 그녀. 그리고 또 공감의 박수.
‘여성은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남성 중심의 사고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에게 “쪼개지 마”라는 말을 하더라도 놀라지 않아야 하는 세상이 되고있다. 역사는 남녀동등의 시대로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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