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무방비로 테러 당하는 무서운 광경을 보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떠 올렸던 또 하나의 공포는 무엇이었을까. 감히 입밖에 내기도 두려웠던 생각, 그것은 아웅산 테러와 KAL기 폭파사건의 기억이었을 것이다.1983년 10월9일 미얀마를 방문 중인 전두환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아웅산 국립묘지를 참배하려는 순간 폭탄이 터져 부총리 등 17명이 사망했다. 미얀마 정부는 북한의 테러 범 3명을 체포했고 북한과의 국교를 단절했다.
1987년11월29일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하여 방콕으로 가던 대한항공 소속 보잉기가 버마근해 상공에서 폭발, 115명이 사망했다. 바레인 정부는 비행기에 폭발물을 장치하고 중간기착지에서 내렸던 북한의 테러 범을 잡아 남한에 넘겼다. 그 테러 사건들이 일어난 것은 불과 십 수년 전 일이다.
통일부장관 경질을 계기로 햇볕정책이 숨을 고르고 있는 시점에 터진 미국의 테러사건은 우리의 남북관계를 뒤 돌아 보게 한다. 햇볕정책이 왜 필요했나. 왜 많은 국민이 햇볕정책을 지지했나.
굶주리는 동포를 돕자, 교류를 넓혀 통일을 앞당기자 라는 아름다운 슬로건에 가려진 더욱 절실한 목표는 북한이 손에 쥔 폭탄을 내려놓게 하자는 것이었다. 테러를 응징하기에 앞서 햇볕으로 테러를 예방하자는 공감이 햇볕정책의 토대였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미국의 테러를 화제로 삼고 있다. “서울에서 저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못 잤다. 북한과 진정한 교류가 가능한가. 왜 햇볕정책을 펴야 하는가”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한다.
그러나 이런 논쟁은 대개 “그렇기 때문에 햇볕정책을 계속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미국의 테러에 대한 충격은 ‘반(反) 햇볕론’을 강화하기 보다 ‘햇볕 불가피론’으로 갈수밖에 없다.
김대중 정부의 북한 정책은 어려운 고비를 넘고 있다. 8.15 방북단의 불상사를계기로 햇볕정책 비판 여론이 고개를 들고, 야당들은 햇볕정책 추진에서 보다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이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한다.
평화유지라는 절박한 요구에서 시작된 햇볕정책이 그 토대를 다지기도 전에 온갖 무지개 빛 풍선들을 날리면서 정도이상으로 들떴던 것은 분명히 잘못 된 일이다. 이번 사태를 그 동안 너무 들떴었다는 경고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민주국가에서는 여론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북한이 이번에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전에 없이 유연한 자세를 보인 것은 변화의 조짐으로 보인다. 그러나 합의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정부는 북한이 과연 실천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는지 철저하게 검토하여 성급하게 앞서나가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앞서가면 불필요한 기대를 부풀리고, 남북관계에도 부담이 된다.
정부가 이번에 ‘반테러 공동선언’을추진한 것은 아직도 성급함을 버리지 못한 것이 아닌가 라는 우려를 갖게 했다. 북한으로 하여금 과거를 씻고 새사람이 되었음을 세계에 선언하도록 하자는 의도는 좋으나 ‘우리 손잡고 회개하자’는 목사님의 권유를 연상시킨다.
북한은 미국에서 테러사건이 터지자 “UN회원국으로서 테러에 반대한다”는 신속한 반응을 보였는데, 지금으로선 그것이 북한이 나갈 수 있는 마지막 선일 것이다. 남북이 반테러 공동선언을 할 만한 극적인 계기나 무르익은 상황도 없는데 너무 앞서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정부는 테러집단과 그 지원국에 대해 응징을 다짐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피의 악순환’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나 처참한 테러현장에서 그런 ‘성경말씀’이통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테러의 비극 앞에 눈물 흘리는 미국인들의 얼굴위로 폭격에 쫓기며 울부짖는 아랍인들의 얼굴이 겹쳐지는 아픔을 느낀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햇볕정책을 거듭 지지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한다.그러나 그것은 83년과 87년 그 용서할 수 없는 기억을 달래며 어렵게 다잡은 마음임을 잊지 말라. 햇볕정책은 신중하게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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