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의 베트남이었고, 단지 피바다(Sea ofBloodshed)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1989년 2월15일 구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최종 철수를 지휘했던 보리스 그로모프전 소련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 등 당시 참전 장성들은 19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아프간 전쟁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라고 술회했다.
소련군 총참모부 부참모장과 러시아 국방부 차관을 역임한 후 현재 모스크바주 주지사인 그로모프는 당시 소련과 아프간을 연결하는 다리를 도보로 건너 마지막 철군을 할 때를 회상하면서 “엄청난 무게의 짐을 벗어 던진 기분이었다”며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정치적 실수’”라고 단언했다.
그는 80년대 말 부대가 협곡에서 무자헤딘을 추적하다 매복에 걸려 호되게 당했던 쓰라린 경험을 언급하면서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하더라도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없을 것”아라고 강조했다.
다른 퇴역 장성들도 험준한 산악지대의 계곡, 무자헤딘의 끝없는 매복과 게릴라전 등을 떠올리며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기계화부대를 지휘했던 루슬란 아우셰프 전 장군은 “미군은 광신도들의 미친듯한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 특전부대사령관이었던 알렉산더 레베드 장군은 “비열하고, 더럽고, 유혈만 가득한 전쟁”이라며 “소련은 마을 주민 중 한명만 무자헤딘이면 마을 전체를 파괴하는 전술을 사용했지만, 이는 무한정의 보복만을 촉발시켰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늑대들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마크무트 고리예프 전장군도 89년 초 잘라라바드 전투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 처음 만났다며 미국의 아프간 개입은 ‘자업자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당시 빈 라덴은 민병 대원들에게 일당 200달러를 지불하고, 시장과 사무실에 폭탄테러를 일삼았다”고 말했다.
소련군은 타지크스탄과 우즈베크스탄에 기지를 두고 아프간에 주요 기지에 1만 명씩 교대 주둔하며 전쟁을 했다.
하지만 아프간 반군은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등에서 미국등으로부터 무기와 보급품을 받으며 저항했고 소련은 이 같은 보급로를 저지하지 못해 패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소련은 10년간의 아프간 전쟁에서 1만5,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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