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모로코. 점차 현대 물질문명에 오염돼 가고 있는 그곳에 전통 이슬람을 믿으며 그 교리에 따라 엄격히 생활하는 부족이 있다.그들의 족장인 라이슐리(숀 코너리). 독립운동을 이끌던 아랍 반군 지도자인그는 미국의 원시적 제국주의의 침략이 시작되자 분노한다.
군사를 이끌고 미국인 저택을 습격한 그는 미국인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에덴 부인(캔디스버겐)과 그녀의 아들을 납치한다.
이 사건은 프랑스 독일 등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는 미국은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깟 아랍의 작은 부족장쯤이야. 테어도어루즈벨트 대통령(브라이언 키스)은 해군을 급파해 그녀를 구하려 한다.
프랑스와 독일도 합동작전에 참가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금방이라도 끝날것 같은, 승부가 뻔해 보이는 싸움은 그러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라이온은 손을 들거나 쓰러지지 않는다.
지금 40대들은 기억할 것이다. 터번을 두른 채 말을 타고 사막을 달리는 숀코너리와 그런 그를 점점 사랑하게 되는 캔디스 버겐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옥의 묵시록’ ‘긴급명령’ ‘제로니모’의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미국 존 밀리어스 감독이 1975년에 만든, TV에서도 방영했던 영화 ‘바람과 라이온(The Wind And The Lion)’이다.
국내 개봉 당시 우리는 부끄럽게도 중년의 두 배우의 멋지고 이색적인 사랑의 대서사시로 보았다.
비극적이고, 미국 우월적인 결말을 유도한 ‘할리우드의 파시스트’라 불리는 감독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최악의 테러가 미국 뉴욕의 심장부에서 일어나고, 그 배후로 이슬람 원리주의자 빈 라덴이 지목되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결코 ‘과거’일수도, ‘신나는 액션과 러브 스토리’일 수도 없다.
‘바람(The Wind)’은 미국이다. 정확히 말해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라이온(The Lion)’은 아랍, 좁게는 라이슐리이다.
‘사막의 전사’인 사자는 바람앞에 굴복하지 않는다. 모래에 묻혀 죽을지언정, 자기 종교와 신념과 부족을 버리지 않는다.
1세기 전 역사가, 그것을재연한 25년 전 영화가 이를 말해준다. 그 ‘바람과 라이온’이 지금 미국 부시 대통령과 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이라면? 그의 이름 앞에 붙은 아랍어 ‘오사마(Osama)가 바로 ‘사자’란뜻이다.
사막의 외로운 그 사자가 진정 무서워 하는 것은 사나운 바람이 아니라 어쩌면‘바람과 라이온’처럼 유치해 보이지만 ‘사랑’이아닐까.
할리우드가 미국의 ‘정의’를 과시하려 만든온갖 테러영화로 ‘사자’의 잔인성만 떠올리며 흥분하기 보다는 ‘바람과 라이온’을 다시 한번 보며 그 ‘바람’의 패권주의에 대항하는 ‘사자’의 운명과 삶을 이해하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비극적 역사의 반복이 누구의 죄인가.
이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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