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를 맞아 조직원 하나가 완전히 혼수 상태. 또다른 적의 출현. 이젠죽었다 싶은 데 돌연히 나타난 가위를 든 여자. 여자는 비호처럼 날아 적을 초개처럼 날리고, 가위로 그어 버린다. (‘조폭 마누라’)“여자는 자고로 남잘 잘 만나야 해.남자의 힘이란 뭐냐. 이거(돈)랑 이거(섹스)거든. 안 그래? 나랑 잠깐 쉬었다 가면 내일 일당까지 줄게.” 남자 승객의 희롱에 여자 운전기사는 급정거한다.
남자를 몰아내고 끝내 차비를받아냈지만 계속되는 남자의 희롱. 여자는 끝내 주먹을 날린다. ( ‘피도 눈물도 없이’)
이젠 여자들도 때린다. 그들은 거침없이 이단 옆차기를 하고, 칼을 들고, 멋지게 ‘한 건’을 해 낸다. 몸놀림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설정이 달라지면서 결국은 여자를 여성성과 모성에 포박하는 기존의 극구성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화가 여성을 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여성 액션 전성시대
‘멜로’ 보다는 SF 액션, 갱스터 영화 등 다양한장르의 영화가 기획되면서 여성들의 액션에 집중하는 영화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추석에 맞춰 개봉하는 신은경 주연의 ‘조폭 마누라’(감독 조진규)가 시작이다.
‘날 것’의 느낌이 살아있는 새로운 느와르를 선보였던 ‘죽거나 나쁘거나’의 류승완 감독은 미니 스커트 입은 전도연과 가죽점퍼 입은 이혜영 주연의 ‘피도 눈물도 없이’(12월 22일 개봉)를 촬영 중이다.
일명 ‘펄프느와르(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식 범죄영화)라는 이 영화는 투견장을 운영하는 남자의 여인으로 사는 라운드 걸 출신의 수진(전도연)과 노름쟁이 남편 때문에 아이까지 빼앗기고 조폭들의 협박에 시달리는 경선(이혜영)의 ‘큰 거 한 건’을 노리는 이야기.
액션 장면이 적지 않은 까닭에 두 배우는서울 대방동 액터스 스쿨에서 액션 연기를 훈련했다. “지난 해부터 액션영화가 그렇게 하고 싶더라구요.
‘와호장룡’의 양자경 같은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그만큼의 무공은 아니지만 새로운 변신이 너무 재미있어요.
과격한 장면이 많아 손도 좀 다치기는 했지만.” 연일되는 강행군이지만 전도연의 목소리는들떠있다.
통일된 한반도 2020년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납치 미스터리극인 ‘예스터데이’(감독 정윤수ㆍ내년 설 개봉 예정). 고강도 액션을보인다는 이른바 ‘메타-하쉬’ 액션을 표방, 특수요원으로 나오는 김선아가 촬영 전 2개월 간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프로급 액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총 한 자루만 들고 미국을 누빈 여고생 4명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은 ‘아프리카’(감독 신승수ㆍ11월 말 개봉 예정)는 이요원 김민선등 신세대 스타들이 엮어내는 ‘민간 액션’이다.
내년 초로 크랭크 인이 연기된 무협 ‘청풍명월’에서 ‘섬’의 주인공 서정까지검객으로 변신하는 등 충무로 여배우들에게 ‘액션’은 일대 유행이다.
■‘조폭’으로 더 우려 먹을것이 없을까?
여성 액션 영화가 잇달아 기획되는 데는 ‘조폭 영화’의 성공도 한 요인이다. 개인의 성장사, 사회와의 갈등, 그리고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와슬픔 등 ‘조폭’ 은 할 얘기가 많은 영화 소재이다. 그러나 남자 영화는 너무 많고, 이제 ‘여자’로 이야기 축을 옮긴다.
이미 할리우드에서도 ‘미녀 삼총사’ ‘툼 레이더’로 여성액션은 상당한 수익을 올렸고, 장쯔이는 ‘와호장룡’에 이어 ‘러시 아워 2’에서도 기막힌 발차기를 보이며 할리우드 진입에 성공했다.
■액션이 여자에 대한 생각을바꾼다?
여성 액션극이 조폭 영화의 한 변주임에는 틀림없으나분명한 시각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조폭 마누라’에서 여자는 공무원인 남편의 사랑에 ‘감화’되는 대신 남편을조폭으로 끌어 들인다.
여자들의 배신이 그려지는 듯하나 예상치 못한 결말을 배치하는 ‘피도 눈물도 없이’역시 새로운 접근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최근의 우리 사회는 여성주도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짙다.
‘정사’ ‘해피엔드’에서도 언뜻 보였던 모성을 제거하려는 시도는‘조폭 마누라’에서도 보인다. 여성에 대한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그럼 남자 주인공들은? “나의 사랑으로 너를 여성으로만들겠다”고 폼잡던 남성상도 이제 “어머 주먹 좀 쓰시네요.
부럽네요”식으로 대사를 바꾸어야 할 참이다. ‘조폭 마누라’에서 박상면이 공무원을 그만 두고, 신은경의 졸개가 되었듯 말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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