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냈던 책의 (하)권은 영원히 쓰여지지 못하겠지요.그러나 그는 아마 (상)권에서 할 말을 다 했던듯 합니다.(상)권을 낸 뒤 35년을 더 생존했음에도 그는 (하)권을 쓰지 않았습니다. 동주(東洲)이용희(李用熙ㆍ1917~1997) 선생의 ‘일반국제정치학(상)’이라는 책입니다.
이번 미국 땅에서 벌어진 동시다발 테러 사건과 그 배후로 이슬람권 테러리스트가 지목되는 것을 보면서 동주의이 책과 그가 말했던 ‘문명 권역의 충돌’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문명 권역의 충돌’이라 하면, 몇 년 전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이 떠오르지요.
그러나 동주는 헌팅턴보다 훨씬 앞선 1962년 냉전 체제하 세계의 변방, 아니 이념 대결의 한복판에 있었던 한반도 남쪽에서 이미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제3세계에도 변변히 끼지 못했던 약소국 한국의 입장에서 그는 당시를 지배하던 좌ㆍ우 이데올로기나 권력정치의 시각이아니라, 문명(文明)의 권역(圈域)과 전파(傳播)라는 틀로 국제정치학의 ‘일반론’을 세우려 했습니다.
기독교, 유교, 이슬람 3대 문명권의 발전과 상호작용이라는 면에서 국제정치를 분석한 동주의 시각은 과거 인류사가 아니라 지금의 21세기를 내다본 혜안이라는 생각은 그의 책을 처음 읽을때나, 지금 미국 사건을 보면서나 드는 겁니다.
“자본주의의 승리, 서구문명의 세계 정복은 피상적 현상”이라는 것이 헌팅턴의 경고이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카터 행정부 국가안보 담당 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의 근저 ‘거대한 체스판’도그렇습니다. 그는 미국을 ‘역사상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세계 강국’이라고 규정하고 유라시아라는 거대 대륙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그 패권 게임을 체스판에 비유한 거지요.
미국 테러 사건의 배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비인도적인 테러라는 행위로드러난 이번 사건은, 그러나 동주가 말한 국제정치 일반론의 분명한 현실화일 겁니다.
동주는 노년에는 우리 옛 그림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그가 한국의 전통회화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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