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들어 우리 나라는 경제발전에 걸맞지 않게 후진적인 전염병 때문에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홍역이 창궐하는데 예방접종 약이 부족하여 부랴부랴 외국에서 대량으로 수입하여 일시에 많은 대상자에게 접종을 하고, 최근에는 콜레라가 전국적으로 만연하여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우리가 후진국으로 다시 전락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그러나 이런 일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1992년 이래 이미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새로운 전염병이 발생했고, 오랜 기간 발생하지 않았던 전염병이 다시 만연하는 사례가 각국에서 늘어나면서 1995년 세계보건기구는 이들 신종 및 기타 전염병의 예방과 관리를담당하는 새로운 부서를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면왜 이와 같은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우선 전염병을 일으키는 병원균도 생물체로서 이 세상에 살아 남기 위해서 인간과 공생할수 있도록 진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이 전염병으로 죽으면 병원균도 함께 사멸하므로 함께 살기 위하여 병원균의 독성이 약해지는 것도그런 현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항생제에 대한 병원균의 내성형성 등 병원균의 적응과 변화도 자연의 법칙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이밖에도 노령화와 행태의 변화, 해외여행과 국제간 교역의 증가, 개발로 인한 새로운 환경에의 노출, 혈액제재의 광범위한 사용과장기이식 등 국제적인 전염병의 전파를 유발시킬 수 있는 의료기술과 산업의 발달 등도 신종 전염병 및기존 전염병 재만연의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런원인들은 어쩌면 불가피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존의 전염병이 감소했기 때문에 국가의 공중보건활동의 중점이 다른 문제로 옮겨가고, 이완된 것과 개개인의 주의와 관심이 줄어든 것도다른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런 이유가 더 크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서구의 선진국들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기초적인 전염병 관리체계가 완벽하게 정착되지않은 상태에서 경제발전의 여파로 전염병이 감소한것을 기화로 소위 첨단분야의 보건의료서비스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염병 관리체계의 기초가 완벽하게 정착된 상태에서는 그 기능과 활동이 일상화되어 흔들림이 없지만,기초가 불완전한 상태에서는 첨단이 기초를 대체해 버리고 말기때문에 문제가 생기는것이다. 튼튼한 기반이없는 상태에서 첨단을추구하는 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과 같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우리의 보건의료계에 만연돼있는 것이 바로 문제다. 기초적인 것은 진부하고, 그 가치가 적은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 때문이다.
민간의활동에서는 말할 것없고, 정부의 정책과 활동에서조차 그러한 경향을 감지할 수 있다. 기초를 다지지 않고 첨단으로 나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떤 경우에는 정부가 해야할 일과 하지않아도 될 일을구분하지 못하는 듯하다. 수십만 명에 한 건발생하는 선천성 기형의 발견에수 십억 원의 재정을투입한다거나, 재정이 있으니할 필요도 없고할 수 없는일이라도 하는 것같은 사례들을 본다.
정부는 이번의 사태를 교훈으로 기초를완벽하게 정착시키는데 전력하기를 바란다. 보건복지부가 전염병예방을 위한별도의 기금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는데 이문제는 기본이요 기초적인 것이므로 경상비에서 조달하고, 특수한 문제를 별도 기금으로 해결하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라고 본다.
물론 이와 같은기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의료관계인의 적극적인 협조와 모든 국민이 자신을위하고 타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홍재웅 인하대 교수 사회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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