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내가 코스타리카 열대를 드나들 때 일이다. 쇠뿔아카시아 개미를 연구하러 팔로베르데라는 늪지대에 있는 작은 열대연구소를 찾았다.코스타리카의 수도산호세에서 흡사 1950년대 우리국도 위를 기던 시외버스와 흡사한 걸타고 거의 한나절을 덜컹거리며 달려 어느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땅거미가 어둑어둑 지기 시작한 강가에서 마을 사람들이 저어주는 조그만 통나무카누를 타고 한반시간 강줄기를 따라올라가니 저편 산기슭에 희미한 불빛 몇개가 흔들리고 있었다.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내려놓고 씻는 둥마는 둥 서둘러 식탁에 앉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석유발동기로 전기를 생산하여 매일저녁 그저 한두시간 불을 밝힐수 있을 뿐이었다. 검은콩과 쌀 그리고 바나나 볶음을 한접시 담아 식탁에 앉자마자 불이 나갔다.
천지가 졸지에 암흑의 세계로 빠져들며 마주 앉은 동료의 얼굴은 고사하고 무얼 먹는지 음식도 전혀 보이질 않았다.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어둠 속에서 모기들만 제 세상만난 듯 무차별적 공격을 감행해왔다.
배가 너무 고파한 손으로는 모기에 물린 곳을 뒤늦게 때리느라 바쁘고 다른손으로는 연신 접시를 더듬어 무언가를 입속으로 퍼 넣었다. 그러던 중 밖에서 부릉부릉 소리가 여러 번들리더니 갑자기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빛을 되찾은 반가움은 잠시였다. 접시위를 새까맣게 덮고있는 것은 검은 콩만이 아니었다. 검은 콩들 사이사이를 수백 수천마리의 모기들이 뒤덮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늪지대에서 정말 무서운 건 모기떼가 아니었다. 며칠 후 건너편 숲에서 하루종일 개미를 들여다보다 저녁에 돌아와 보니 연구소가 발칵 뒤집혀있었다. 미국 마이애미 대학에서 온 대학원생 하나가 벌에 쏘여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연구소 뒷산에 오르다 바위틈에 발이 끼었는데 마침 그 바위틈에 성질이 독하기로 소문난 이른바살인벌들(killer bees)의 집이있었던 것이다.
살려달라는 비명소리에 함께 산을 오르던 동료들이 뛰어내려와 그친구를 꺼내려 했지만 그들 역시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벌들로부터 공격을 당해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멀찌감치 떨어져 가물거리는 그의 신음소리를 들을뿐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끔찍한 벌들을 우린 살인벌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들은 우리가 꿀을얻기 위해 기르는 꿀벌과 유전적으로 전혀 다를 바 없는벌들이다.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브라질 농림부가 꿀수확량을 늘일 계획으로 아프리카에서 특별히 꿀을 많이 생산한다는 품종을 들여다 시범적으로 기르던 벌들이다.
그들이 특별히 꿀을 많이 생산할수 있는 데에는그들의 남다른 부지런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신경질적인 성격이 한몫을한다. 아마도 아프리카에 살며 그곳 원주민들에게 자주 꿀을 빼앗겼던 경험 때문에 그렇게된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에 이주해 살던벌들이 언제부터인가 보호구역을 탈출하여 북상하기 시작했다. 워낙 경쟁력이 강한 벌들이라 비교적 양순한 다른 양봉꿀벌들을 몰아내고 무서운 속도로 번지더니 1980년대에는 중미를거쳐 드디어 미국에 상륙했다.
그들은 자기집에 불편하다싶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하는 동물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가차없이 몰려나가 쏴댄다. 그들의 침이보통 꿀벌의 침보다더 강한 독성을지닌 것도 아니다. 다만 워낙 여러 마리에게 쏘이기 때문에 독성이 쌓여 때로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벌은 사실 적에게 일침을 가하고 나면그 몸에 침과 함께 독을 만드는기관을 통째로 꽂아놓고 날아간다.그러고 나면 벌은 그저 두어 시간후 목숨을 잃는다. 나는 일벌들을 생각할 때마다 일단 자기 비행기가 총탄을 맞으면 미국항공모함의 굴뚝으로 뛰어들던 가미카제 특공대를 떠올린다.
한편 적의 몸에 남기고 온 독침기관은 자율신경에 의해 쉼없이 적의 몸 속으로 독을 주입하고 반대쪽으로는 휘발성이 강한 화학물질을 날려보내 동료들로 하여금 그가 공격한 적을 발견할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벌에 쏘이면 빨리 먼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나도 그 당시 중미에서 일단 살인벌에게 쏘이면 무조건 전속력으로 도망치도록 배웠다. 그것도 탁트인 들판 쪽이 아니라 관목숲 같은곳을 뚫고 달리도록 말이다. 나뭇가지들이 뒤엉켜 있는 관목사이로는 벌들이 잘날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우리 나라에도 요사이 벌에 쏘여 죽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는모양이다. 주로 추석을 전후하여 벌초를 하다 변을 당하는 이들이많은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별로 없다가 근래에 갑자기 많이 생긴 것일까.
우리나라 벌들도 살기가 예전 같지 않아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일까. 무슨 이유인지 확실하진 않지만날이 갈수록 앨러지의 종류와 정도가 늘어가는 추세와 비교하면 벌들이 더 포악해지는 것이아니라 우리 몸이점점 취약해지고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생각이 든다.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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