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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반상회에 가지 않을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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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반상회에 가지 않을 자유

입력
2001.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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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에게서 독립을 한지 15년이 지났지만 나는 반상회에 가본 일이 거의 없다. 한때 내가 작가이니 그래도 이웃 아줌마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몇 번 나가 본 일이있는데 그럴 때마다 아파트 값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리만 듣고 그냥 돌아와 다시는 가지 않는다.하기는 그럼 반상회에 가지 않는 게 단지 이런 이유 때문인가, 아니다. 나같이 직업을 가지고 있는 주부는 남편이 반상회날이라고 특별히 일찍 돌아와 주지 않는 한 저녁 시간은 부산하고 또 소중하다. 아이들에게 온전히 엄마 노릇을 해 줄 수 있는 시간은 사실 그때뿐인 것이다.

80년대 각 집에 숨어 있는 수배자를 찾아내기 위한 반상회의 기억도 내가 반상회에 나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이고, 알고 보니 반상회가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던 시기에 시작된 모임이라는 이유도 나의 거부감을 정당화시켜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떠나 내가 반상회에 가지 않으려는 진짜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나는 친하지도 모르지도 않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있는 곳에 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곳에 끼어있을 필연적이고도 윤리적인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데 꼬박꼬박 반상회에 불참하는 벌금을 내고 있으니 그 액수를 떠나 불쾌해진다.

내 나이 또래 어린 시절 서울의 서부지역에 살아 학교를 다녔던 사람은 누구나 대통령이 외국을 들락날락 할 때마다,혹은 외국의 대통령이 들락날락 할때마다 종이 태극기를 들고 김포가도의 뙤약볕 아래 서 있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니그뿐인가 내가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내가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는 훈련이라고는 받아 본 일이 없다. 추궁이라는 것은 언제나 내가 단체에서 이탈했다는 것, 다른 사람과 달리 행동한다는 것이 다였다.

그래서 학교를 다 졸업해 버리기를 바랬지만 사회 역시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인주의가 나쁘다고 배운 기억만 있을 뿐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나쁜지 아무도 모른다. 생활에서 없기 때문이다.

모임이 끝난 후 2차를 가야하고, 돌리는 폭탄주를 빠짐 없이 마셔야 하고 그런 대열에서 이탈해 혼자 집에 가야 한다거나 혼자만 음료수를 마시겠다거나 고집할 때 쏟아지는 눈총에 ,정말 내가 너무 까탈스러운가,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싫다.

일전에 철학을 전공하신 어떤 분이 축구경기를 보면서 한국선수들이 개인기가 부족한 이유는 진정한 의미의 개인주의가 한번도 없던 나라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놀란 적이 있었다. 이기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의 진정한 차이를 인정해 주지않는 한 그렇다면 우리 축구까지(!)앞날이 어둡다는 말인지!

그것이 공익을 해치지 않는 한, 그것이 비윤리적이거나 범죄적이지 않는한 한 사람의 특성이고 자체의 다양성으로 존중되는 것이 무엇 그리 나쁜가.나 는 앞으로도 아마 반상회에 나가지않을 것이고, 나는 앞으로도 내가 원하지 않는 폭탄주는 거절할 것이다.

갈비집에 열리는 모임에 혼자 피자를 한쪽 싸들고 가서 먹을수도 있고, 생맥주 집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있어도 모두가 즐거운 모임.....언젠가 들은 독일의 녹색당 전당대회처럼 공원에서 열리는모임, 할머니가 뜨개질감을 가지고 오고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와 뛰어 다니는 아이들을 지켜보는그런 모임.

드러누워 있는 사람도 있고 연단에 서서 청바지를 입고 연설을하는 대표가 있고 거기 모인 어떤 사람들도 “이렇게 제멋대로라니 개판이다”라고 단정하지 않는 모임이라면 모를까, 나는 당분간 어떤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을 예정이다.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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