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젠트증권 김경신(金鏡信)상무는 최근 한 대학에 증권 강좌를 나갔다 겪은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숨이 턱 막힌다.“주식 시장의 기능은 산업 자본의 조달을 원할하게 하는 것”이라는그의 설명에 강의를 듣던 학생들이 키득키득 웃었던 것.
데이트레이딩으로 하루 100만~200만원을 쉽게 버는 학생들에게 김상무의 강의는 고리타분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학생들은 오히려 “어떻게 하면 작전주를 미리 알고 들어가 작전 세력들보다 먼저 털고 나올 수 있느냐”며 작전주 감별법만 물었다.
학생들에게 주식 시장은이미 일종의 머니게임장으로 변한 지 오래다.
■ 일반인들까지작전주만 쫓아다녀
주식 시장에 온갖 작전들이 난무하고 일반인들마저 작전주를 찾아 단기 매매에 열중하는등 주식 시장이 제기능을 상실한 채 갈수록 변질되고 있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할 금융감독원과 증권거래소도 서로 영역 다툼만 하고 있어 애꿎은 선의의 투자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
최근 주식시장에는 주가 조작 사건이 잇따라 적발됐다. 4일 G&G그룹이용호(43)회장이 삼애인더스 주가조작 등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6일에는 S산업 지모(51)대표가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에 앞서 1일Y제분 박모(48)상무가 220억원대의 시세 차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고 지난 달 28일에는 증권선물위원회가 소액 주주운동을 가장한 주가 조작행위를적발했다.
문제는 작전이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데 있다. 7일 금감원이 허수주문을이용한 주가 조작 혐의로 검찰에 통보한 15명 가운데는 평범한 주부와 대학생이 여럿 포함됐다.
S산업 주가 조작 사건에서도 서울 J병원장인 김모(56)씨가작전 세력들과 결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 투자자들까지 작전주만 쫓아다니는 행태가 일반화한 것이다.
인터넷 증권 정보 사이트에는 작전주에 대한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대량 유통되고 있고 서점가에도 작전주 포착법을 안내하는 책이 봇물을 이룰 정도다.
■ 거래소와 금감원의 영역 다툼, 사후 약방문
작전이 일반화하고 첨단화하고 있는데도 당국은 여전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으로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
금감원은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이 작전주로 의심되는 종목을 알려 오면 재조사를 해 혐의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검찰에 통보하는절차를 밟고 있다.
이 때문에 통상 적발에서 사법처리까진 6개월 이상 소요되고 있다. 짧으면 몇시간 길어도 1주일을 넘기지 않는 작전이 난무하고 있는데 당국의 대응은 일반 투자자의 손해가 커질 데로 커져 판이 다 끝나고 잊을 만할 때쯤 나오는 셈이다.
증권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거래소가 판단해 해결해도 될 사건까지 보고할 것을 강요해 적절히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금감원이권한 침해 등을 우려, 거래소에 재량권을 주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 매매시스템개선 시급
매매시스템 개선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매매시스템은 매수잔량과 매도잔량을확인할 수 있는데다 호가 단위를 5단계나 보여주고 있어 작전을 조장한다는 것. 즉 세력들이 체결되지도 않을 매수 주문을 잔뜩 낸 뒤 개인 투자자들이몰려 주가가 오르면 털고 나온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 주식시장 등지에선 매매 중개인이 있어 허수 주문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증권사애널리스트는 “사실 하루에도 작전이 의심되는 종목이 200개쯤 된다”며“주식 시장에서 작전으로 한 몫 챙길 수 있는 풍조가 계속 된다면 과연 누가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겠느냐”고말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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