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사립대 중에서도 ‘중상급’에 속하는 경북지역의 A대. 정상적이라면 총 재적생 7,000명, 재학생은 5,000여명은 돼야 하지만, 캠퍼스는 썰렁하기만 하다.이 학교의 8월말 현재 재적생은 3,500여명. 휴학생을 뺀 재학생은 2,000여명에 그치고 있다. 몇몇 학과는 입학정원이 40명 안팎인데도 한 학년 학생수가 10명에도 못 미친다.
최근 수년간 신입생을 입학정원의 50∼70%에 채우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 학교 관계자는 “덕분에 1대1 수업이 가능하다”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방 사립대들이 학생들의 외면과 당국의 무관심에 밀려 하나 둘씩 붕괴돼 가고 있다. 학생을 구하지 못해 상아탑을 철거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부산ㆍ광주ㆍ전남지역은 올해 입시부터 고교 졸업자가 대학정원보다 적어져 이 지역 지방대는 대규모 미달사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방대들은 내년에는 전국적으로 고졸자가 대학정원보다 적어지게 돼 ‘유령 캠퍼스’를 면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이렇다할 처방전은 나오지 않고 있다.
⊙ 지방대는 왕따
지난해 입시에서 미달 학부가 많았던 부산 B대 관계자는 올해 입시에 대비, 학생 유치를 위해 고교에 나가 교사와 학생들을 설득해봤지만 헛탕만 쳤다.
한학생은 장학금 지급, 자격증 취득 지원, 취업 알선 등 대학의 시책을 홍보하자 “자격증을 10개 이상 갖고 있고 토플 토익점수가 높아도 지방대 나오면 취직은 안되고 결혼도 못한다”며 받은 팸플릿을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2002학년도 예상되는 부산지역 고졸자는 5만,170명. 이 지역 4년제 대학과 전문대를 합한 대학정원인 6만3,025명보다 훨씬 적다.
광주ㆍ전남 지역도 고졸자 5만7,755명에 대학정원 6만1,756명이다. 2003학년부터는 아예 전국의 고졸자가 대학정원보다 6만여명이나 적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대가 학생모집에서 죽을 쑤는 것은 당연하다. 올해 1학기 수시모집도 지방대는 70%나 포기했다.
가까스로 수시모집을 실시한 대전 C대 관계자는 “경쟁률이 5대1을 넘어 상당히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거의 등록을 하지 않아 당황했다”고 말했다.
지방대에 들어온 학생도 기회만 있으면 ‘탈출’을 감행한다. 2001학년도 수도권 대학에 편입한 4년제 대학 출신자의 40%(1,440명)가 지방대 출신이었다.
⊙ 지방대 위기는 당연
경북 D대의 한 교수는 “사학 운영자 가운데는 본관만 지어놓고 학생 등록금으로 나머지를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며 “지원자가 넘쳐 나던 1980년대까지는 이런 경영이 가능했지만 2000년대 들어 입시생이 줄자 기반을 갖추지 못한 이런 사학은 재앙을 맞게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학생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와중에서도 지방 4년제 사립대는 2002학년도 모집정원을 5,412명 증원했다.
내실을 키워 수도권대학과 경쟁하기 보다는 외형부풀리기와 마구잡이 신입생 모집을 통해 수지를 맞추려는 재단의 ‘단견’이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쪽으로 상황을 이끌어 가고 있는 셈이다.
서울 명문대에 편중된 당국의 대학 육성책도 지방대를 고사시키고 있다. 2005년까지 1조4,000억원이 지원될 ‘두뇌한국(BK) 21’ 사업의 경우 지난 2년간 지방대에 투입된 돈은 수도권의 3분의 1 수준인 1,247억원에 불과하다. 지방대 출신 채용을 꺼리는 기업의 풍토도 지방대 위기에 한몫을 했다.
⊙ 돌파구 못찾는 지방대
몇몇 지방대는 비인기학과 폐쇄 등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대구지역 지방대의 한 교수는 “자체적인 자구노력과 (지방대에 대한)취업쿼터제등 외부 지원이 본격화하지 않으면 머지 않아 ‘지방사립대’라는 말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안경호기자
khan@hk.co.kr
전성우기자
swchun@hk.co.kr
■지방大,눈물겨운 '학생모시기'
“우수 수험생에게는 고교 때부터 장학금을 주고 입학하면 콘도급 기숙사까지 제공합니다.”
위기에 처한 지방대가 ‘인재 모시기’에 나섰다. 각 고교를 밑바닥부터 샅샅이 훑어가며 교사와 학생을 상대로 1대1 설득작전을 펴는 것은 이제는 고전적인 수법.
초호화 기숙사 제공, 입도선매를 위한 고교 등록금 지원, 오픈 캠퍼스, 고교 홈페이지에 대학 홍보란 신설, 교내 고시원 제공 등 다양한 아이디어로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전략’을 펴고 있다.
대전 한남대는 우수 고교생을 유치하기 위해 88명에게 고교 등록금(연간 60여만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물론 장학금을 받은 고교생이 꼭 한남대에 들어와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이 제도를 처음 시행한 결과, 10% 이상을 유치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이다.
대전 목원대는 최근 재학생 7명을 ‘인터넷 홍보도우미’로 선발, 전국 고교의 홈페이지에 각종 입시ㆍ홍보자료를 게재하고 있다.
이 대학은 전국 1,400여개 고교에 자료를 게시, 1학기 수시모집에서 경쟁률이 5대 1이 넘는 성과를 거뒀다.
시설투자 경쟁도 치열해 부산 신라대와 인제대는 고급 콘도 수준의 기숙사를 건립하고, 교내에 고시원을 만들기도 했다.
강원 원주시 상지대는 이 달 중순 수도권 116개교 진학담당 교사 간담회를 서울 센트럴시티호텔에서 갖는다.
5월에는 수도권 89개 고교의 교장을 서울 메리어트호텔로 초청했다. 두 행사 모두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탁상시계 등 선물까지 주느라 1,000만원 가까운 비용을 지출했지만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표정이다.
이 대학 홍보 담당자는 “교장과 교사들을 1대1로 만나 ‘학생을 보내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다소 낡은 방식이기는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교수를 연고지 고교에 보내 학교를 홍보하는 경우도 많다. 전북 군산시 호원대는 교수와 교직원에게 출신 고교를 방문, 입시 설명회를 갖는 홍보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대전시장 출신인 염홍철(廉洪喆) 한밭대 총장은 자신이 직접 나서 10월중 수십 개 고교를 순회할 계획이다.
그러나 학생 유치전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대학은 입시설명회를 빙자해 지역 고교 3학년 담임 교사들을 호텔이나 고급음식점 등에 초청, 향응을 베풀고 상품권 등을 나눠주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 향응은 룸살롱 등 2차로 이어져 수백만원대의 술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경남 모 대학의 경우 고3 담임교사들의 금강산 단체관광을 추진,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일부 교사들은 대학측에 노골적으로 향응과 금품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 대학 관계자는 “간담회를 할 때면 밤에 전화를 걸어와 어디서 술 마시고 있으니 나오라는 교사들도 있는데 대학으로서는 이런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다”고 털어 놓았다.
곽영승기자
yskwak@hk.co.kr
김창배기자
kimcb@hk.co.kr
■공직 50% 지역인재 발탁을"
“치유불능 단계로 접어든 지방의 황폐화와 망국적인 ‘서울병’에는 인재의 균형배분이 유일한 묘약입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21개 대학 총장으로 구성된 ‘비 수도권대학 육성특별법 입법추진을 위한 특별위원회’ 공동의장인 윤덕홍(尹德弘ㆍ54) 대구대 총장은 지역불균형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지역인재 발탁 장려제도의 도입을 제안했다.
윤 총장은 “서울병이 지속되는 한 국가의 미래는 없다”며 “지방대에 대한 정부와 자치단체의 지원을 늘리는 동시에 비 수도권 대학 졸업생들을 국가시험에서 일정비율 이상 합격시켜 지방인재를 양성해야 국가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위가 4일 모임을 갖고 비 수도권대학 육성특별회계를 설치해 재정안정과 취업기회 균등보장, 지방대 졸업생 취업쿼터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비수도권대학 육성을 위한 특별법(가칭)’의 입법청원을 국회에 내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전체 인구의 55%에 이르는 비수도권에서 5년 이내에 공직에 50%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최소자격요건을 정하고 일정기간 지방근무를 의무화하면 부작용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윤 총장은 ”물론 지방대는 나름대로 최고수준을 자랑할 수 있는 특성화에 박차를 가해야 하지만 대학의 노력이 한계에 부딪힐 때 정부의 지원이 가장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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