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타고, 빛이 바랜 하얀 우산. 비가 올 때마다 여자는 그것을 들고 나갔다.어딘가 슬쩍 두고 오기를 은근히 바라면서.그래야 새 것을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막상 잃고 나자 허전해 찾으려 나섰다. 잃었던 그의 사랑은극장 의자에 뾰로통하게 서 있었다.
영영 잃어버렸다면 그 서운함도 묘미가 있었으리라. 재회 또한 말로 쉽게 설명 못할 묘미가 있는 것.
천방지축 여류 칼럼니스트 루나(천헤이린ㆍ陳慧琳)는 우산처럼 우연히 사랑의 흔적을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했다.
자신의 이름을 새겨 첫 사랑의 남자인 호야에게 선물한 냇킹 콜의 LP판. 어떻게 여기 있을까. 남자에게 따지려 전화하지만그는 이미 캐나다로 떠나고 없다.
그것을 다시 사들이려 했다. 그러면 떠나간 사람도 돌아올 것 같아. 그런데 이미 어떤 DJ가 예약해 놓았다.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랑을 알지 못하는 냉혈한.”
라디오 프로그램 ‘LP 특급’의 DJ 쯩영(궈푸청ㆍ郭富城). 풍부한 음악지식과 독설로 인기 1위를 달리고있는 그의 취미는 중고 LP수집이다.
오래 전부터 사고 싶었던 판을 발견했다. 그런데 가게주인이 어떤 여자에게 양보하면 안 되냐고 부탁한다.
첫사랑의추억이라고. 그녀를 위해 팔지 않았다. 판을 박살 낼 것 같아서. “첫 사랑은 상처가 큰 법.”
둘은 이렇게 악연으로, 원수로 만났다. 그러나 먼저 이 사실만은 알아두자. 만약어떤 사람이 너무나 미운데도 불구하고 자꾸 생각난다.
그 얼굴을 떠올리면 화가 나 견딜 수 없다. 어떻게든지 만나서 골려 주고 싶어 그의 행적(라디오진행, 컬럼)을 좇는다면,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당신은 이미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상대에 대한 공격과 상처내기야말로 그 사랑에 다가가기위한 과정이다.
쯩영은 라디오에서 루나를 욕하고. 루나는 칼럼에서 그를 공격하고, 쯩영의 라디오프로그램에서 둘의 감정다툼이 극에 달해도, 갑자기 첫사랑의 남자가 찾아와 루나가 재결함을 약속해도 관객은 안다.
둘은 마침내 ‘해피엔딩’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그것에 더욱 확신을 심어주는 독신으로 사는 둘의 쓸쓸한 정경들과 서로의존재를 잊지 않으려는 행동들.
로맨틱 코미디란 그런 것이다. 달콤하고 섬세한 양념들을 얼마나 섬세하게 뿌렸는가에따라 맛이 달라질 뿐이다.
홍콩영화 ‘소친친(小親親)’에서 라디오 진행과 칼럼을 통해 전달되는 싸움과고백이 웃음과 따뜻한 사랑의 메시지라면, 영화 내내 떠나지 않는 흘러간 음악은 두 사람의 안타깝고 쓸쓸한 마음의 표현이다. 천헤이린이 그 마음을깜찍하게 전달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감각적인 영상으로트렌디 드라마에 LP판 같은 복고 이미지를 조화시킨 시종웬(奚仲文)감독은 ‘친니친니’로데뷔한 미술 감독 출신. 시나리오는 ‘첨밀밀’의 안시(岸西)가 맡았다. 15일 개봉.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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