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 팩커드와 컴팩의 합병은 불황의 늪에 빠진 세계 PC 시장에서 생존을 위한대개편 작업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다.실제 세계 PC 시장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컴팩과 휴렛 팩커드는세계적인 정보기술(IT) 산업의 침체와 함께 컴퓨터 가격 인하 경쟁으로 촉발된 이윤 감소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등 생사의 기로에 서 있었다.
특히 휴렛 팩커드는 2ㆍ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14% 감소하고, 순익은전년 동기의 10억 달러 수준에서 크게 떨어진 1억1,000억 달러에 그쳤다. 더욱이 휴렛 팩커드는 2ㆍ4분기 매출 중 PC가 25억 달러로 가장높은 비율을 차지했지만 6,2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 PC 사업 포기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컴팩도 지난 5년동안 세계 PC 판매 정상의 자리를 지키다 6월 1위 자리를델 컴퓨터에 넘겨준 뒤 주력 사업을 PC 제조ㆍ판매에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등을 결합한 패키지 사업으로 전환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있다.
캠팩은 PC 시장이 올들어 15년만에 처음으로 전세계 출하량이 감소할 정도로 침체된데다 델 컴퓨터의 살인적인 가격 인하 공세에 시달린 끝에6월 ‘경쟁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익성이 낮은 하드웨어부문의 비중을 줄이고 마진 높은 서비스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컴팩의 이 같은 구상은 “경기침체기인데다 IBM이라는 최강자가 버티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휴렛 팩커드와 컴팩은 이처럼 델 컴퓨터의 가격 할인 공세에 희생됐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어 합병된 회사는 규모의 경제를 적극 활용, 델 컴퓨터(시잠 점유율 13%)를 제치고 선두 자리(19%)에 오를 전망이다. 또 서버 컴퓨터시장에서는 점유율 39%를 차지, 독보적 위치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양사의 결합 이후PC는 물론 통신 장비와 반도체 등 부품업계에도 구조조정의 태풍이 몰아 칠 전망“이라며“그러나 pc 시장이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도 있는 만큼 무한대의 가격 인하 경쟁은 업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말했다.
이종수기자
jslee@hk.co.kr
■국내 파급효과
HP와 컴팩의 합병이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으로는 두드러지지 않겠지만 결국 PC산업의 불황 탈출을 유도해 반도체, TFT-LCD 등 컴퓨터 부품산업에 더할 나위 없는 호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HP는 국내 프린터, 스캐너 등 이른바 이미징(imaging) 제품군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고 컴팩은 중저가형 노트북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반적인 국내 PC 시장에서는 점유율이 2~3%선에 그치고 있다.
약 1년 뒤 명실상부한 합병회사가 출범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판도가 크게 뒤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이 국내 업계의 판단이다.
HP에 이른바 '제조업자 설계생산'(ODMㆍ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방식으로 PC 완제품을 납품하는 삼보컴퓨터측은 "2ㆍ4분기 미국 컴퓨터 소매시장에서 HP가 45.5%, 컴팩이 28.9%를 점유했다"며 "합병회사의 늘어난 규모에 따라 삼보에 대한 ODM 수요도 자연스레 올라가기 마련"이라고 밝혔다.
LG IBM 관계자는 그러나 "합병회사가 세계 1위 PC, 주변기기, 서버, 스토리지 업체로서 국내시장에 본격적으로 상륙하면 예기치 못한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사의 합병은 또 PC산업의 불황 탈출에 대한 한가닥 기대감을 불러일으켜 장기 침체국면에 빠진 국내 D램, TFT-LCD 업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합병의 시너지 효과를 감안하면 PC시장이 꿈틀대리라는 것은 자명하고 PC부품 산업도 연동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번 합병 목적이 수위업체인 미국의 델사로부터 1위를 탈환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증권협회 관계자는 "양사의 합병이 PC산업 불황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D램 업계에 특별한 수혜는 없다"고 진단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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