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52)가 브람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처음으로 녹음했다.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빈 필과 협연한 음반으로 EMI에서 나왔다.정경화, 사이먼 래틀, 그리고 빈 필…. 더 바랄 게 없는 최상의 만남이다.래틀은 내년 9월부터 베를린 필의 음악감독겸 상임지휘를 맡게 돼 있는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래틀과 정경화의 만남은1994년 버밍엄심포니와 녹음한 바르토크의 바이올린협주곡 2번 이후 7년만이다.
그 해 이 음반은 세계적 권위를 지닌 그라모폰 음반상의 협주곡상을받았다. 빈 필 역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교향악단이 아닌가.
정경화의 브람스 바이올린협주곡 녹음은 30년간 벼른 끝에 이뤄졌다. 그동안 음반사가계속 졸라댔지만 미뤄왔다.
“육체적으로, 음악적으로 더 무게가 실려야 하고 더 많은단련을 거친 후에야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녹음한 이 음반에서 정경화는 더 깊고 여유로워진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공격적이고 강렬한 연주로 독기마저 뿜어내던 젊은 시절 그의 에너지는 거친 숨을 고르고 착 가라앉았다. 날카로움 대신 부드럽고 넉넉한 원숙함이느껴진다.
1악장 바이올린 독주의 시작부터 달라진 소리를 들려준다. 예전의 정경화라면 팽팽하게당겨진 시위를 떠나는 활처럼 솟구치며 밀어냈을 소리가 차분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출발한다. 힘차게 약동하는 3악장에서도 그는 흥분하지 않고 단호하게자신의 열정을 단속하고 있다. 오랜 내공 축적의 결실일 그 단단함은 뿌리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가슴을 밀고 들어온다.
이 음반에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도들어 있다. 시벨리우스, 말러에 이어 베토벤 전곡 녹음에 들어간 사이먼 래틀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래틀은 베토벤교향곡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으로 평가 받는 빈 필과 함께 이 작업을 시작했다.
래틀의 ‘운명’은담백하다. 감정의 진폭이나 긴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는 자극적 연주가 아니다.
그는 과장이나 군더더기 없이이 곡의 위엄을 압도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거뜬거뜬 나아가는 래틀의 템포는 마치 ‘인생에머뭇거릴 시간은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는 자만이 아닌 확신에 찬 걸음으로 전진하고 있다. 거뜬한 템포, 색채와표현의 분명한 대조 위에 논리적이며 사려 깊고 명석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정경화의 브람스와 래틀의 베토벤. 둘 다 화제다. 이 둘을 한 장에 묶은 것만으로도이 음반은 들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문의 (02)3449-9400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