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라면 모름지기 사람을 살리는 일에전념해야 한다. 그 일 때문에 역설적으로 의사들은 죽음이라는 현상에 오히려 가깝게 다가간다.전통적인 죽음의 정의는 심장의 정지이다. 그런데 요즘은맥박이 뛰는데도 죽었다는 진단이 내려진다. 뇌사(腦死). 대뇌 기능의 정지, 즉 사람됨이라는 정지가 죽음이라는 선언이다.
심장이식은 이 죽음의 정의 아래서가능해진다. 급사라는 말은 시간적인 관점의 정의로 증상이 시작된 지 한 시간 이내에 사망하는 경우를 뜻한다.
두 해 전에 만난 급사 환자. 40대교사였던 그는 수면 중 이상한 소리를 내며 의식을 잃었다. 병원으로 실려가는 중 의식을 회복했고, 가까운 의원에 가 응급 검사를 받았으나 별 이상이없어 일단 퇴원했다가 다시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심실세동이 기록됐다. 심실의 전기활성이 매우 빨라져 무질서해진 심실세동은 심실 근육을 제대로 수축시키지 못하므로 그 펌프 기능이 중단된다.
이 상태가 중지되지 않으면 대뇌에 손상을입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이 치명적인 혼돈은 강력한 전기충격을 가해 각 세포의 전기활동을 모두 같은 시기로 일치시킴으로써 중단될 수 있는데 그장치가 제세동기이다.
제세동술로 일단 위기를 넘긴 환자는 ‘소생된 급사’라는 진단 하에 우리 병원으로 이송됐다. 심장의 구조적인 이상은 없었으나 심전도에서 심실의 전류를 조절하는 이온 채널에 이상이 있음을 시사하는 특징이 발견됐고 급사의 위험성이 높은 브루가다(Brugada)증후군으로 진단됐다.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치료법은 체내에 이식할 수 있는 제세동기를 시술하는 방법이다. 이식된 제세동기는 언제 생길지 모를 심실세동을 늘 감시하고있다가, 증세가 나타나면 자동적으로 전기충격을 가해 심실세동을 중단시켜 급사를 방지할 수 있다. (이 제세동기를 시술받은 환자가 국내에는 현재약 100 여 명 정도이다)
문제는 대형 자동차 값에 버금가는치료비였다. ‘아직 보험에서 급여를 해줄 수 없는 치료비’라고 걱정하는 나에게 부인은 ‘치료비를 위해 은행 융자를 해야 했지만 남편을 안전하게지킬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술은 성공적이었다.
시술 후 죽음 앞에 섰던 남편이 안쓰러워 “아이들 진학 지도 때문에 피곤했지요”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부인과 그 부인을 바라보는 남편…. 그들 사이에 내가 본 것은 위기를 넘어 튼실한 울타리 안에 있음을 확인하는 부부와 그것을 가능케 한 사랑이었다.
안신기 연세대의대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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