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계자들은 30일 오전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사퇴 불가론을 한 목소리로 밝혔다. 전날(29일)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명예총재가 임 장관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을 때 청와대가 보여준 곤혹스럽고 신중한 태도와는 달라진 모습이다.“어제 저녁만 해도 이런 저런 의견이 있었다”는한 고위관계자의 언급으로 미루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이날 아침 입장을 명확히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가김 명예총재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임 장관 고수’를 견지하는 이유는 사안의 본질상 임 장관의 사퇴 사유가 없다는 것이고 국가정책적 차원에서나, 정치적 차원에서도 사퇴의 실(失)이 득(得)보다 크다는 것이다.
우선 정부의 방북 허가와 방북단의 돌출행동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정부가 방북단 일부의 돌출행동을 감싸거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으나 엄하게 처벌하지 않았느냐”면서“일부의 돌출행동까지 장관이 책임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임 장관 사퇴론은 아무 것도 안 하는 냉전시대의 통일부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정책적차원에서는 임 장관의 사퇴 여부가 개인적 거취 문제가 아니라 햇볕정책의 지속 여부와 맞물린다는 것이다. 임 장관 사퇴는 북한을 움츠리게 할 뿐아니라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다른 여러 나라를 실망시킬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인식이다.
여권의 한 고위인사는 “9월 김 대통령의 유엔 방문, 10월 상하이(上海) APEC 정상회담 때 이루어질 한미 정상회담에서 정부는 미국의 대북정책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이라며 “만약 임 장관을 사퇴시킨다면 이런 구상은 초장부터 물거품이 된다”고 말했다.
정치적차원에서는 임 장관 사퇴가 권력누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있다. 청와대는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사퇴론을 야당이나 자민련이 요구한다고 받아들이면 그 순간 정권의 권위는 실추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고위관계자는 “역대어느 정권 때 장관 인사에 이렇게 집요하게 개입한 적이 있느냐”면서 “도를 넘는 사퇴론은 정치의 순리에도 어긋나고 이득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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