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개발원이 24일 ‘여성폭력 종합방지대책’ 중의 하나로 부부간의 강간죄 신설도 마련중이라고 발표하자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여성개발원은“구타 후나 별거중인 상태에서 일어나는 강압적 성관계도 명백한 성폭력으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대부분의 남성이나 법률학자들은 “폭행 협박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부부간 강간죄를 도입하는 것은 부작용만 낳는다”며 반대하고 있다.
■ 찬성> 변화순(한국여성개발원,가족보건복지 연구부장)
한국여성개발원이 여성폭력 방지 종합대책(시안)을 발표했다.여러 안건 중에서 성폭력 범죄의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의 일부로 기존 형법만으로도 가능한 부부간 강간죄 처벌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제안이 각계에 미친 반응은 매우 컸다.
특히 남성들의 반응은 매우 심각했다. 부부간에 사이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의 허락을 받아야한다거나 , 어쩌다 이러한 상황에 까지 왔는지, 혹은 남성의 하락한 지위가 매우 우려된다는 내용으로 집약된다. 또 일부 여성들은 항상 화간만 하고 사는가라는 질문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부부간의 강간을 인정하면 낙태가 증가할 것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우선 부부간의 강간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부강간이 범죄로 성립되기 위한필수적인 요건이 있다. 배우자로부터 폭행을 당한 이후, 또는 별거를 하는 경우 등에서 강압적으로 성적 관계를 맺는경우, 이에 저항하는 물적, 정황적 증거가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극히 일부인데 왜 이것을 법제화하는가, 그리고 이를 법제화한다면 모든 사적영역에의 성적 행위가 다 법제화되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부부사이가 좋은 상태에서 부인이 거절하는 것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아내 구타 후 부부문제를 성관계로 풀려는 남성중심적인 생각에 대해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의 피해가 심각하므로 이에 대해 예방 및 근절하자는 의도이다.
부부간 폭력은 아내 구타로 구분되는데,통념적으로 남성의 경우 아내를 구타한뒤 성관계를 가지면 다 풀린다고 생각한다. 옛날 속담에 부모가 싸움을 하면그날 저녁에 부모 사이에서 자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부부간의 일회성 싸움까지 너무 심한 범죄 다루 듯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성들이 일방적, 반복적으로 피해를 당할 때 이것이 살인 내지는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지 말도록 예방하자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왜 아내구타로 다루지 부부간의 강간이라는 항목을 도입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 될 수 있다. 본원의 조사(성의식과 여성에 대한 폭력연구,1999)에 따르면 구타를 당한 피해자에게 있어서 구타 후 성관계를 가졌는가에 ‘그렇다’고 응답한 여성이 17.4%이고, 구타한 남성의 경우 13.6%였다. 이와 같이 배우자로부터 학대당하는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할 개연성은 적지 않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당하는 성폭력도 심각하지만 배우자로부터 당할 수 있는 성폭력은 더욱 더 심각하다. 이것이 아내구타 문제로 가리어져 있어 사회적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폭력방지 종합대책(시안)의 골자는 부부강간죄의 신설이 아니라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통한 모든 유형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있다.
■반대 정행철- 동의대 법학과교수(한국 형사법학회 부회장)
우리 형법 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를 강간죄로 처벌하고 있다. 이는 부녀(여자)의 성적 자결권을 보장하고 있는 규정이라고 일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 규정은 강간죄의 객체를 여자로 한정하고 있다.
강간죄의 객체와 관련하여 부부 사이에서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는가에 대해 대다수의 형법 학자는 물론 1970년 3월 10일 대법원 판결에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여성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입법안에는 가정폭력의 예방 차원에서 부부 사이에서도 강간죄를 인정하자고 한다.
학자들은 법률상의 처가 강간죄의 객체로 되는가에 관해서 이를 부정하는 견해가 다수이고 긍정하는 견해는 소수이다.
혼인계약의 내용에 강요된 동침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할 수 없으므로 부부관계가 해소되어 가는 경우는 물론 그렇지 않은 때에도 처에 대한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부부간의 특수성을 생각할 때 처는 강간죄의객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부관계에서의 성 관계를 강간죄의 행위객체나 주체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간음은 부녀에 대한 혼인외의 성행위를 의미한다는 것이 사회통념이며 법적 용어로도 그렇게 사용된다. 부부간의 성행위를 결코 간음이라고 볼수 없다. 따라서 다소 처에 대한 강압적 성행위가 있더라도 강간죄의 구성요건 해당성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민법상 부부는 동거의무가 있고(민법 제826조 1항), 동거의무는 성생활을 함께 할 의무를 내포하는 것이며 또 성생활의 결함이 이혼사유가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처에 대한 강간죄는 성립될 수 없다.
부부간이라도 별거중인 경우에는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을 하지만 우리 대법원을 비롯한 대다수의 학자들은 별거중이더라도 부부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하고있다.
다만 부부 사이의 성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폭행이나 협박을 가할 권리까지 인정할 수 없으므로 처에 대한 폭행ㆍ협박에 의한 성교는 비록 강간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수단으로 행해진 폭행ㆍ협박만을 폭행ㆍ협박죄로 처벌할 수는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부부 사이의 강간죄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 시급한 것은 아니며 현행 규정으로도 어느 정도의 처벌은 가능하므로 가정폭력에 대한 예방 수단을 초강수로 대처하는 것은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법은 적극적으로 사회를 선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분쟁이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수단으로투입될 뿐이다. 특히 형법은 이러한 기능을 최소한으로 수행해야한다.
자꾸 이혼율이 높아 가는 우리 사회에서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를 인정하자는 시도는 가정을 온전하게 가꾸어 가야 하는 시대적 필요성에 역행하는발상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서구국선 대부분 도입 형법남용 지적도 많아
부부 강간죄 도입 움직임이 알려지자 한국여성개발원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다양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성관계에 동의한다는 녹취라도 해야하나?” “무서워서 어디 잠자리를 제대로 하겠냐” “나이가 들면 여자들의 요구가 더 많은 상황에서 오히려 남자들한테 이득이다” “부부 강간죄를 만들려면 부부 성관계거부죄, 부부 명예훼손죄등도 만들어라”는 등등이다.
한국여성개발원은 그러나 이는 잘못 이해된 것이라며 “부부강간죄는 폭행 후, 별거, 이혼 소송 중인 상태 등 부부관계의 파탄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강압적 성관계에 적용되는것”이라고 말한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일환이라는 것이다.
서구의 경우 1970년대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이탈리아, 영국, 독일, 미국 등대부분의 나라에서 부부 강간죄가 도입됐다. 특히 독일의 경우, 다른 나라와 달리 1996년까지 강간죄의 성립범위를 ‘혼인외의성교’라고 못 박았지만 1997년 법률개정을 통해 이 문구를 삭제, 결혼 유무에 관계 없이 강간죄가성립돼 2년 이상의 금고형 처벌이 가능하게 됐다.
법 논리상으로 아무런 조건이나 제한 없이 폭행이나 협박 등 강요에 의해 성관계가 이뤄지면 부부강간죄가 성립되는데, 입증 곤란의 문제는 여타 다른 성폭력 범죄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별거 상태 등 부부관계가 사실상 파탄 상태에 이른 경우에 적용되고 있다. 특히 국내의 경우 강간죄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부부관계조차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기우라는 주장이다.
1999년 유엔인권이사회가 한국정부가 보낸 2차 보고서에 대한 심사결과를 발표하면서아내강간이 범죄로 성립되지 않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하지만, 폭행죄 등으로 처벌이 가능한데도 부부 사이에 강간죄까지 도입하는 것이 형법의 남용이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여성운동가들은 “부부 사이에서도 성행위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지만 이것이 법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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