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고 시작되어 ‘새 역사를 창조하자’로 끝나는 국민교육헌장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 학교를 다닌 사람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더욱이 학교 또는 군대생활에서 이 헌장을 못 외어 벌이나 기합을 받은 사람이라면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기억이 더욱 선명할 것이다.어떤사람은 이 헌장이 명문 중의 명문이라고 극찬하는 반면에 추상적 낱말의 유희에 불과하다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민교육헌장을 기초로 박정희 정권은 이른바 ‘국민의식개혁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친 바가 있지만 과연 이 헌장이 우리 국민의의식에 얼마나 파고 들어 무엇을 남겼는지 한번 곱씹어 보아야 한다.
일본은 우리의 국민교육헌장과 같은 것은 없지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어려서부터 반드시 가르치는 불문율이 있다. 첫째,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 것 둘째, 남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말 것 셋째,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 바로 그 것이다.
이 규범은 일본국민 생활 전반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철저히 파고들어 일본인의 특질로 일찍이 자리잡고 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이 규범이 사회질서를 바로 잡고 있고 또한 이를 위반하는 자에 대하여는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 제재가 뒤따른다.
정직하지 못하고 튀는 행동을 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면 일본사회에서는 무서우리만큼 가혹한 시련을 각오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이를 어기겠는가.
서양에서도 사회질서를 받쳐주는 근본정신은 장황한 법률규정이 아니라 남의 권리를 존중하여 주고 그럼으로써 자기의 권리가 보호받는 것이다.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예링의 말은 바로 이 점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어떤가. 남에게 피해가 되든 말든 자기의 이익을 챙기면 그만이고 어려서부터 기를 살려 어떻게 하든지 튀는 행동을 하여야 대접받는다는 잘못된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또한 정치인의 공약에서부터 중요한 약속까지도 말을 바꿔가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여야 능력있고 융통성이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심지어 외국에서 눈살을 찌푸리는 행동을 하고 와서는 그것을 무용담이라고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한국단체여행객을 받는 프랑스와 미국의 일부 호텔에서는 각 방의 ‘미니바’조차 없애고 우리를 모독하고있다. 또 고리의 사채이자를 못갚았다고 ‘신체포기각서’를 써야하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우리말고 또 어디에 있는가.
이제 무더위 속에 휴가를 보내고 돌아와 우리를 한번 뒤돌아볼 시간이다. 그러나 온국민이 전국의 산과 바다 그리고 계곡에서 휴가를 즐기고 떠나간 자리는 과연 무엇이 남았는가. 해운대와 경포대에서만 약 1,500만명이즐기고 떠나간 자리는 고성방가와 쓰레기 더미 속에 환경오염만 남기고 오지 않았는가.
미사여구를 총동원한 국민교육헌장은 1968년부터 매년 요란한 헌장선포기념식을 비롯하여 전국민에게 암기를 강요하더니만 박정희 정권의 종말과 함께 흐지부지 되다가 1995년 헌장 28주년을 맞이하여 그 운명을 다하였다.
그 헌장을 외우느라고 고생한 국민들도 모르게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제 국민교육헌장과 같이 추상적인 낱말로써 국민을 계도할 것이 아니라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기초질서부터 전국민을 상대로 교육을 하여야 한다. 이 모든 잘못을 언제까지 가정교육 또는 학교교육의 부재에만 돌릴 것인가.
우리국민은 개별적으로 튀다가도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되면 그 곳으로 열화같이 타오르는 격정이 있다. IMF시절 세계가 놀란 ‘금모으기 운동’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자기 자신도 곧 불편하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우리 모두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써 기본을 세워야 한다. 새 역사는 헌장을 통하여 창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백태승 연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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