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곡처리장등 지원 강화…정부미 방출량은 축소정부가 올 가을 쌀값 파동을 막기 위해 ‘응급처방전’을내놨다. 3조9,000억원의 자금을 긴급 투입, 쌀 수매량을 늘려 쌀 공급 과잉에 따른 쌀값 하락을 막아보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올 가을 수확기를 겨냥한 일회용이어서 근본적인 쌀산업정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추가 개방을 앞두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서 ‘쌀대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쌀이 남아돈다
현재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쌀 재고량은 735만섬. 1996년 169만섬에 이어 97년 345만섬, 99년 502만섬 등 기하급수적인 증가추세다. 쌀 보관 비용에만이미 올들어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문제는 갈수록 심각하다. 풍작이 예상되는 올 10월쯤 추수가 끝나면 쌀재고량은 사상 최고치인 1,118만섬에 달해 유엔식량기구(FAO)의 권장량(1년 소비량의 17~18%인 550만~600만섬)을 2배 가까이 뛰어넘게 된다.
식생활 변화로 지난 96년 107kg에 이르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해 94kg으로 급감했다. 이에 비해 양곡창고에 쌀은 넘쳐나고 있다. 5년째 풍작을 보이고 있는데다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협정에 따라 2004년까지 매년 쌀 수입량을 늘려가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 민간부문의 쌀매입이 관건
이에 따라 정부의 이번 쌀값 대책도 수급안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의 쌀 방출량을 줄이는 대신 민간부문에서 쌀을 많이 살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는 것이 골자다.
쌀의 수급논리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계절 진폭. 쌀값이 떨어지는 수확기와 쌀값이 치솟는 이듬해 수확기 직전과의 차이를 나타내는 계절진폭(유통마진)이 크면 클수록 미곡종합처리장 등 민간유통업체 쌀 매입이 늘어난다.
WTO 가입 이후 정부의 시장기능이 크게 축소되면서 민간유통업체들의 쌀 매입 여부가 쌀값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있는 실정.
그러나 최근 쌀 공급 과잉과 정부 추곡수매량 축소에 따른 민간재고량 증가로 95년 11.2%나 되던 계절 진폭이 올해에는 1.3%까지 떨어져 있다. 이 정도 계절진폭으로는 민간유통업체 대부분이 올 가을 쌀 매입을 꺼릴것이 분명하다. 농가들이 막상 풍작을 하고도 쌀을 팔 데가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이에 따라 수확기에 민간업자들이 쌀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곡종합처리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쌀의 계절진폭을 늘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정부가 수확기에 사들인 후 이듬해 시장에 내다파는 물량을 100만석 이내로 제한하고 계절진폭이 없을 경우 아예 정부미 방출을 중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도 올 가을 민간부문의 쌀 매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방안으로 해석된다.
■ 근본대책이 절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올 가을 쌀값 파동은 어느정도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갑수(韓甲洙) 농림부장관은 “이번 대책이 차질없이 시행될경우 계절진폭이 1.3%에서 지난해 3% 수준으로 회복돼 지난해 수확기 수준의 쌀값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농민단체들은 “농협의 시가매입방식이 수확기 쌀 값 하락 방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번 대책이 민간유통업체의 적자보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또 정부미 물량을 줄인데 따른 4,000억원 이상의 재정부담도 짐이다.
전문가들은 2004년 WTO 쌀협상으로 중국ㆍ호주쌀 등 값싸고 질좋은 쌀이 국내 안방을 파고 들 경우 농촌경제의 붕괴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구시대적인 증산정책의 틀 자체를 바꿔서 쌀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국력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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