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일상에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가도 세상사의중심을 시로써만 짚어내는 시.” 시인 김종해(60)씨가꿈꾸는 시는 이런 것이다.시는 일상을 넘어선다. 어설픈 초월의 포즈가 아니라 강고한 서정으로 우리의 삶을 어루만지고 보다 높은 곳으로 이끌고가는 언어, 그것이 시의 모습일 것이다. 김씨가 꿈꾸는 ‘세상사의 중심을 짚어내는 언어’가 그렇다.
김씨가 새 시집 ‘풀’(문학세계사 발행)을 냈다. ‘별똥별’(1994) 이후 7년만에 나온 그의 여덟번째 시집이다.등단 38년에 올해로 이순이 되는 시인의 언어는 한층 가벼워지고 짧아지면서 그만큼 깊어졌다.
‘눈은 가볍다/ 서로가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 내리는 눈은 포근하다/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 눈내리는 날은 즐겁다/ 눈이 내릴 동안/ 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눈’ 전문)
시집의 서시인 ‘눈’은김씨의 최근 지향을 한 눈에 보여준다. ‘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는 세상사의 이치를 깨닫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나도 누군가를 업고싶다’는 따뜻하고 넉넉한 바람이 읽는 이에게 그대로 와닫는다. 난해하고 복잡한 언어의 장식은 아예없다.
시집 말미에 시인론을 쓴 신경림 시인의 표현처럼 ‘탈속(脫俗)’의 기미가 풍기는 김씨의 시편은 또 있다. ‘사람들이 하는 일을하지 않으려고/ 풀이 되어 엎드렸다/ 풀이 되니까/ 하늘은 하늘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햇살은 햇살대로/ 내 몸속으로 들어와 풀이 되었다/ 나는 어젯밤 또 풀을 낳았다’로 이어지는 시집의 표제작인 ‘풀’ 또한 풀과 하늘과 바람과 햇살이라는 자연을 빗대 우리의 속된 세상살이 즉 ‘사람들이 하는 일’에대한 거부와 그것을 넘어서는 커다란 포용의 경지를 일러준다.
김씨의 이번 시집에 실린 45편의 시들은 거개가 이처럼 시인 자신이 좋아한다는“너무 압축되고 함축되다가 옆구리가 터진 시”, 짧으면서도 그윽한 울림을 주는 가편들이다.
1963년등단한 뒤 초창기 젊음의 번민과 꿈의 좌절에 대한 노래, 1970년대 이후 대표작 ‘항해일지’(1984) 등에서 보여준 억압받는 자에 대한 관심과 일상이 주는 오욕에 대한 비판에서 나아가 김씨는 이제 자기의 날아갈 길을아는 새처럼 시 본령의 서정을 ?O은 모습이다.
‘새는 자기 길을 안다’에서 김씨는 노래한다. ‘하늘에 길이 있다는 것을/ 새들이 먼저 안다/ 하늘에길을 내며 날던 새는/ 길을 또한 지운다/ 새들이 하늘 높이 길을 내지 않는 것은/ 그 위에 별들이 가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별들이 가는 길’을찾아가는 것이 그의 여정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 바탕에는 지상의 우리 삶의 곤궁함이 놓여있다.
여전히 세상은 시인에게 무인도이다. ‘퇴계로에서을지로로 노를 젓는 동안/ 내 돛대 위에 흐느끼던 깃발은/ 가만히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무인도는 점점 커다랗게떠올라 있었다/…/ 어느덧 내 마음 무인도에 가 흐느끼노니/ 내가 밟는 빈 도시의 어둠, 서울의 어둠/ 무인도여 무인도여 살아있는 것이라곤 아무데도 없구나’(‘무인도’ 에서).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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