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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과학적ㆍ민주적 '교육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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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과학적ㆍ민주적 '교육실험'

입력
2001.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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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의 이른바 ‘자립형 사립고’ 시범운영 계획이 좌초의 위기를 맞으며 우리 교육계 전체가 또 다시 일대 혼란에 빠져들었다.획일화된 우리 교육 환경에 학교선택권을 확대하며 제대로 된 사학을 육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중3병’이 되살아나며 계층간의 위화감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예기치 못했던 서울시 교육감의 뒤늦은 ‘딴죽걸기’에 교육부가 적지않게 당황하고 있는 모양인데, 어찌 보면 이만한 반대를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든다. 정부가 하려는 일을 있는 그대로믿어줄 숙맥이 이제 우리 사회에 별로 없다는 걸 어쩐 일인지 정부만 모르는 것 같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면 글쎄 메주가 나올 것은 믿겠지만, 정말 콩을 쓰는지, 우리 콩을 쓰는지 아니면 수입콩을 쓰는지, 뭐 다른 걸 섞는 건 아닌지, 메주는 쒀 골고루 나눠줄는지, 누구는 많이 갖고 누구는구경도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등등 의심의 꼬리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우리 사회의 정부정책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의 수위가 얼마나 높은지 이번 일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기껏해야 전국에서 30개 이내의 사립고를 선정하여 시행할 계획이었다. 우리 나라 교육계 전체를 뒤흔들기에는 턱없이모자란 소규모 ‘실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솥뚜껑만 봐도 놀란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원칙이 계속 흔들리는 정책을 너무나 많이보아왔기 때문이다. 일관성과 투명성이 결여된 정책을 신뢰할 이는 아무도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교육부의 자립형 사립고 계획이 충분히 해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정책 하나만 가지고 소규모로 할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여러 정책들을 입안하여 대규모로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교육부가 계획하는 대로 진행된다는 믿음이 있고 남의 자식이 아니라 내 자식이 갈 수만 있다면 자립형 사립고에 너도나도 보내고 싶어할 것이다. 제도 자체에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기보다는 우리 사회 특유의 ‘평등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정부가 하는 일에 늘 안타깝게 느끼는 것이 있다. 책상머리에서 기안한 정책을 검증 없이 도입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교육부의 실험정신은 오히려 칭찬할 일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실험이 아니기에 문제가 된다. 소수의 자립형 사립고를 만들어 일정 기간 운영해보고 그 효과를 어떻게 평가할 계획이었는지 묻고 싶다. 자립형 사립고 제도를 아예 도입조차 할 수 없는 공립고들과 비교할 것인가, 아니면 자립할 능력이 부족한 사립고들과 비교할 것인가.

실험을 하려면 조건을 바꿔준 ‘실험군’은 물론 그 실험군의 결과와 대조하여 평가할 수 있는 ‘대조군’을 마련해야 한다. 자연과학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자립형 사립고 정책을 도입한 학교들의 성과를 그들이 자립하기전의 상태와 비교하는 것은 올바른 실험이 아니다.

자립형 사립고가 시도한 세부적인 제도의 효과가 아니라 단순히 뭔가 해보려는 노력의 결과를 가늠할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선정한 자립형 사립고와 여건이 비슷하지만 자립 계획을 채택하지 않은 학교들을 선택하여 동시에 모니터링해야한다.

우리 국민에게 어떤 면으로는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교육의 문제인만큼 철저하게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을 택해야 한다. ‘과학적’이란 말과 ‘민주적’이란 말은 사실 거의 같은 말이다.

과학은 특권을 인정하지않으며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동일한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 하나를 내걸고 선택적으로 실험을 하려드니 형평의논리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잘 계획된 정책들을 입안하여 국민 모두가 자유롭게그리고 자발적으로 실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 그 동안 많은 교육전문가들과 관심 있는 지식인들에 의해 적지 않은 정책들이 제안되었다.

나 역시오래 전부터 고등학교를 없애고 초-중-대학교 과정을 각기 5년씩으로 하는 이름하여 5-5-5학제를 제안한 바 있다. 지금도 각종 교육관련 학술대회를 통해 새롭고 합리적인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개인의 앞날들은 물론 국가의 장래가 걸려 있는 교육정책인 만큼 충분한 범국민적 수렴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러자면 가장 민주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취해야 한다. 실행 가능한 좋은 정책들을 엄선한 뒤 온국민이 함께 ‘교육실험’에 참여하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일단 함께 실험을 하기로 결정하면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여러 새로운 정책들 중에서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되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꺼리는 이들은 대조군에 참여하면 된다. 그리곤 충분한 효과가 드러나도록 적어도 한 10년정도는 시행한 다음 가장 훌륭한 제도들을 채택했으면 한다.

교육만큼은 제발 ‘빨리빨리’의 희생물이 되지 않길 바란다. 강산이 적어도 한번은 변해야 우리 교육도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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