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종업원 장모(41ㆍ여)씨는 최근 당한 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지난달 14일 홧김에 상사(40)와 멱살잡이를 하다 뺨을 두대 때렸는데 폭행전과자가 된 것.상사의 신고로 파출소로 연행돼 사과만 하면 풀려날 줄 알았지만 곧바로 관할서에 넘겨져 형사 입건됐다.
담당 경찰관은 “장씨가 전과도 없어 파출소에서 즉심에 넘겨도 될 사안이었지만 경찰서로 넘어와 입건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한 파출소 직원은 “개인 실적평가에서 폭행사건 입건은 즉심보다 1.5점이 높다”며 “그래서 일단 입건하고 보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각 경찰서의 과도한 실적 쌓기 경쟁이 치안 업무의 발목을 잡고 애꿎은 전과자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검거 실적 순위가 경찰서 및 경찰관 개인의 점수가 되다 보니 상부의 실적 강조가 웬만한 즉심 사안도 형사 입건하는 결과를 빚어내고 있는 것.
이 현상은 파출소 직원에 대한 경찰청장의 표창이 지난해 50여종에서 280여종으로 남발되고 성과급이 실시되면서 심화하고 있다.
범죄 유형별로 실적점수 통계를 받아야 하는 강력반 형사는 더 죽을 맛이다. A경찰서 강력반 C경사는 “실적 주문 때문에 사건이 없으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며 “점수가 높은 사건 위주로 수사하기 마련”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경찰 신청 구속영장 기각율은 증가추세다. 6개 경찰서를 관할하는 서울지검 남부지청의 경우 올 1월 경찰 신청 구속영장 기각율(검사 재지휘+판사 기각)은 27.1%(350건중 95건)였지만 2월 29%, 4월33.2%, 6월엔 35.8%로 경찰의 무리한 영장신청을 입증하고 있다.
B경찰서 강력반 J경사는 “같은 사안이라도 구속되면 불구속보다 점수가 2점이 높아 불구속 사안도 영장을 신청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 일선 경찰서는 5월26일부터 시작된 ‘사채ㆍ갈취 폭력배 소탕 100일 작전’의 마감일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오자 다른 사건은 뒷전으로 미루고 사채 폭력 수사에만 매달리다시피 하고 있다.
강남지역 한 경찰서 형사과장은“경찰서별 순위를 매겨 인사고과에 반영하기 때문에 다른 사건은 마감일 이후로 제쳐두고 있다”고 털어놨다.
강북의 한 경찰서는 사채폭력 32건을 적발, 132명을 검거했으나 구속자는16명에 불과했다. 인근 경찰서 형사과장은 “윗선의 독려가 빗발쳐서 겠지만 같은 경찰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민생치안의 최일선인 파출소 직원들도 “112신고를 접수한 뒤 실적과 직결되는 사건위주로 2,3건을 처리하면 8시간 근무가 끝나 순찰활동이 소홀해질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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