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과 관련, 항명파동을 초래했던 심재륜(沈在淪ㆍ사진) 전 대구고검장에 대한 면직처분은 부당하다는 확정판결이 나왔다.이에 따라 법무부는 심 고검장을 대검찰청의 비보직 고검장으로 발령하고 서울고검에 집무실을 마련키로 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강국ㆍ李康國 대법관)는 24일 심 고검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면직처분취소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가 근무지를 이탈해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수뇌부를 비난함으로써 검사의위신을 손상시킨 사실은 인정되지만 당시 검찰 수뇌부가 이종기 변호사의 일방적인 진술만 믿고 징계시효가 지난 과거의 행적을 문제삼아 사퇴를 요구한경위에 비춰볼 때 징계처분 중 가장 가혹한 면직처분을 내린 것은 지나치다”고 밝혔다.
심 고검장은 99년 1월 말 대전 법조비리 사건 당시 “이종기 변호사로부터 전별금 및 향응을 받았다”고 사퇴를 종용받자 공개적으로 이를 부인하고 ‘마녀사냥’이라며 검찰 수뇌부를 강도 높게 비판한 뒤 면직되자 같은 해 5월 소송을 냈다.
법무부와 검찰은 이번 판결로 검찰청법에 8명으로 한정된 고검장 정원 외에 처음으로 비보직 고검장을 발령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자 “예우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공무원법 43조3항에 따라 초과정원이 인정되는 만큼 고검장 발령에 문제는 없지만 정원외 고검장이 탄생하기는 처음이어서 어떤 직책과 업무을 부여할지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또 사시7회인 심 고검장이 최경원(崔慶元ㆍ사시8회) 법무부 장관과 신승남(愼承男ㆍ사시9회) 검찰총장보다 선배여서 선ㆍ후배간의 연공서열과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검찰 조직의 특성상 심 고검장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전망이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김영화기자
yaaho@hk.co.kr
■심재륜씨 일문일답
심 전 대구고검장은 24일 오후 2시께 자신의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에 복귀해 일정기간 동안 직무를 맡은 뒤 명예롭게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시종 밝은 모습이었으나 2년7개월 동안의 야인 생활에 대해 만감이 교차하는지 간혹 착잡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판결에 대한 소감은.
“한편으로 기쁘면서도 잃어버린 세월을 누가, 어떻게 책임지고 보상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니 한편 서글프기도 하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공무원사회, 특히 엄격한 신분보장이 요구되는 판사와 검사의 지위를 행정권이 자의적 결정이나 강요로 함부로 침탈할 수 없다는 역사적 판결이라 생각한다.”
-검찰에 복귀할 것인가.
“검사의 신분보장이라는 상징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정기간은 검사직을 수행할것이나 적절한 시기가 되면 미련 없이 은퇴하겠다.”
-법무부에서는 비(非)보직 고검장으로 임명할 뜻을 비췄는데 이에 따를 것인가.
“임명권자의 뜻에 따를 것이다. 정식 통보가 온다면 내일부터라도 출근하겠다.”
-성명서 파동 당시 정치검찰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소신에 변함이 없나.
“이제 다시 검사가 됐으니 말을 아껴야 할 것 같은데. 소신은 변함없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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