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교가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비틀거리고 있다. 역사 교과서와 야스쿠니(靖國)신사 문제에 따른 한중 양국과의 갈등에 이어 대러 관계마저 냉각 조짐을 보임으로써 일본의 고립감은 커지고 있다.24일 도쿄(東京)신문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연내 개최를 목표로 일정을 조정해온 양국 국방부 장관 회담이 곤란하다고 21일 일본 정부에 알려 왔다.
러시아측은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부 장관의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1996년 4월 이후 양국 국방부 장관 회담이 연례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노골적인 회담 거부이다.
러시아측의 회담 거부는 이른바 ‘북방 4도’(남쿠릴열도) 주변 수역에서의 꽁치잡이문제가 도화선이다. 20일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무성 장관은 알렉산드르 파노프 주일 러시아대사를 불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보내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친서를 전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친서에서 “현재의 상황을 방치하면 최대 과제인 평화조약 체결 문제는 물론양국 관계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한 데 대해 러시아측이 대응을 보인 것이다.
한국 꽁치잡이 어선의 조업 문제가 불거진 이후 러시아는 이 현안을 단순한 어업권,즉 통상 문제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일본은 러시아의 조업 허가는 ‘북방 4도’ 귀속 문제가 미해결 상태라는 그동안의 묵시적 합의를 깨뜨리려는 것이라고 의심하면서 정치문제화를 시도했다.
급기야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나서 ‘양국간 외교 관계’를 언급하자 러시아측의 불쾌감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있다.
양측의 대립은 ‘북방 4도’에 대한 기본적 시각차에서 비롯했다. 러시아는 2도 반환에는응할 용의를 보였으나 나머지 2도는 교섭 대상으로 삼은 것만도 커다란 양보라고 여기고 있다. 반면 일본은 4도 반환을 기정사실화, 그동안의 교섭이평행선을 그어 왔다.
더욱이 대러 관계가 악화하고 있는 데도 일본 외무성이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일본 정부 내에서 ‘2도 선(先) 반환론’과 ‘4도 동시 반환론’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다나카 장관과 외무성 관료의 대립도 끊임없이 거듭되고 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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