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일꾼들, 귀국을 환영합니다. ” “좌경 불순 세력들은 북한으로 돌아가라….” 21일 평양에서 열린 8ㆍ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던 방북단이 돌아온 김포공항 옛 국제선 2청사 주변은 이념 대립의 극단을 달리는 양쪽 진영의 목소리가 난무했다.심각한 사태를 빚진 않았지만 곳곳에서 벌어진 일단의 충돌들은 둘로 갈기갈기 찢긴 우리 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국제선 2청사 밖에서는 오전 11시께부터 진보 진영의 대표격인 한총련, 민주노총 등 통일연대와 민화협 소속 회원 등 환영인파 500여명과 방북단을 규탄하기 위해 나온 베트남 참전전우회, 6ㆍ25참전전우회 등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소속 회원 800여명이 10여㎙를 사이에 두고 진을 친 채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계속됐다.
오전 11시30분께 김포공항에 도착한 보수 단체 회원들은 “좌경불순 세력 방북 승인한 정부 당국은 국민 앞에 사죄하라”는 플래카드를 든 채 “북한의 꼭두각시 통일연대는 정체를 밝혀라. 민족의 반역자,김정일의 하수인들은 북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섬뜩한 구호를 외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진보 진영도 이에 지지 않았다. 한총련 소속 학생과 민화협 회원 등은 “통일의 길을 연 방북단을환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플래카드와 한반도기를 흔들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를합창하며 방북단을 환영했다.
양측의 대립은 23개 중대 2,600여명의 대규모 경찰 병력이 철저하게 통제하고 막았지만 결국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
오후1시께 몇몇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참전용사 집회장 앞으로 한반도기를 흔들며 지나가자, 일부 참전용사 회원들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이들을 쫓아가 멱살잡이를 하며 심한 몸싸움까지 벌였다.
경찰의 제지로 가까스로 불미스런사태는 막았지만, 양측은 서로를 향해 “미친 사람들”이라고 소리치며 경멸의 눈길을 보냈다.
상반된 구호를 외치며 팽팽한 대립을 계속하던 양쪽은 오후 3시40분께 방북단이 입국장을 나서며 공항 청사 출입문을 통과하던 순간 갈등이 극에 달했다.
참전전우회와 향군여성회 회원 100여명이 청사 바깥으로 나오던 방북단들을 향해 계란 10여개를 던졌고 대학생 등 통일단체회원들은 야유와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방북단의 귀환을 축하했다.
이에 참전단체 회원들은 방북단에게 살충제를 뿌리려다 제지 당한 활빈단 단장 홍정식(洪貞植)씨가 펼친 태극기를 앞에 놓고‘애국가’를 부르며 대응했다.
5시간여 동안 이어진 양 진영의 대립 상황을 지켜 보던 한 시민은 “50년전으로 돌아 간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까지 찢겨졌는가 싶어 섬뜩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들이 떠난 후 공항주변을 정리하던 공항의 한 관계자는 “우리사회의 이념대립이 이렇게심각할 줄은 몰랐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양측 갈등의 골이 메울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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