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호주의 ‘백상어’ 그렉 노먼은 당대 최고의 골퍼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가 공저로 지은 ‘Instant lessons -One hundred ways to shave strokes off your golf game’이라는 골프교습서가 있다. 이 교습서에서 노먼은 골프를 잘 칠 수 있는 비결, 즉 스코어를 줄일 수 있는 비결을 현장감 있게 소개하는데 그중 마지막 100번째 레슨이 인상적이다.100번째 레슨의 제목은 ‘모든 것을 털어버려라’다. 요지는 그 동안 가르친 비결들은 물론 게임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깨끗이 잊으라고충고한다. 역시 골프의 진수를 터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노먼은 이렇게 실토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골프를 사랑하지만 골프는 항상 우리가 사랑하는 만큼의 사랑을 되돌려주지 않는다.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얄궂은 운명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결코 나의 승리를 막았던 래리 마이즈나 밥 트웨이, 로버트 가메즈, 데이비드 프로스트의 망령이나 그들의 기적 같은 샷에 대한 악몽을 완전히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배운 것은 골프에는 여러분이 제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노먼은 이어 이렇게 당부한다. “ 여러분은 이기는 것보다 패배하는 경우가 더 많다. 당신이 주말골퍼라면 좋은 샷보다 나쁜 샷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털어 버려라. 잠시 옆으로 물러나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아라.
그리곤 그 동안 일어난 모든 저주스러운 것들을 잊어라. 골프코스에서 분노나 자기연민을 위한 피난처는 없다. 당신이 가능한 한 빨리 평정과 결단을 되찾을 수록 좋은 샷이 빨리 되 살아난다.” 그러면서 노먼은 필드에서 최악의 사태를 맞을 때 1946년 US오픈 챔피언 로이드 맨그럼의 말을 떠올릴 것을 주문한다. “골프가 너의 인생도, 사랑하는 아내도 아니다. 단지 게임일 뿐이다.”
추락은 언제나 있다. 아무리 탁월한 기량을 갖춘 골퍼라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참하게 무너지는 게 골프다. 도저히 흔들릴 것 같지 않은 사람도 사소한 미풍에 마음의 평정을 잃고 혼미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83회 PGA챔피언십 대회결과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골프는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나 고수들은 추락하면서도 살아 남는다. 노먼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은 추락의 순간, 모든 것을 털어 버리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마치 악몽을 꾸다가 꿈에서 깨어나 안도의 숨을 몰아쉬듯.” 이런 능력은 골프의 묘미를 더욱 깊게 해준다.
방민준 한국일보 광고본부 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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