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깡패’로 규정한 국가들을 상대로 한 유럽연합(EU)의 ‘빗장열기’ 외교가 활발하다. 지난 5월 요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대규모 대표단을 북한에 보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중재역을 자임했던 EU가 이번에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쿠바와 외교 관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EU는 22일부터 4일간 쿠바에 각료급 대표단을 파견,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의장과 펠리페 페레스 로케 외무장관 등과 회담할 예정이라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이 19일 밝혔다.
이번 대표단에는 현 EU 의장국인 벨기에의 미쉘 외무장관을 단장으로 EU 집행위원들과 차기 의장국인 스페인 외무장관 등이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EU 집행위 관계자는 “현재 EU와 쿠바당국이 이 문제에 대한 최종 조율을 벌이고 있다”며 “조만간 공식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U 차원에서 쿠바에 각료급 대표단을 보내는 것은 처음으로, 외교 사각지대에서의 독자적인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유럽측의 의도가 가시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달 27일 하원에서 미국 시민의 쿠바 여행 제한 완화를 결의한 직후 즉각 반대 의사를 표명할 만큼 대 쿠바 제재에 완강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미국측의 반응이 주목된다.
한 외교 분석가는 “EU의 대표단 파견은 최근 75세 생일을 맞은 카스트로에게 최대의 선물이 될 것”이라며 “부시 행정부의 일방 외교를 견제하면서 EU의 독자적 외교지평을 넓히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U 집행위관계자는 “쿠바와 새로운 외교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이번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이며, 인권문제 등도 논의될 것”이라고 말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경제적 노림수도 깔려 있다. EU는 그 동안 쿠바 무역봉쇄법안인 미국의 ‘헬름스-버튼법’이쿠바와 무역거래를 하는 외국기업의 미국 내 활동까지 규제하는 데 대해 “지나친 치외법권적 초법조치”라며 반발해왔다.
EU는 최근 프랑스의 주류회사인페르노-리카르 그룹이 쿠바의 하바나클럽산 럼주를 수입하는 문제를 두고 미국과 상표권 분쟁을 벌이면서 대 쿠바 봉쇄조치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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