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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독단·독선이 갈등·분열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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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독단·독선이 갈등·분열의 씨앗

입력
2001.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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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모든 면에서 격변,격동하는 때에 사회가 혼란한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갈등과 분열이 극심한 우리의 경우에는 오늘날 사회 공동체의 원활한유지가 가능할지 회의와 불안을 느끼게 된다.첨단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기인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변화가 인류사의 대전환을 초래함도 불안의 요인이지만 국내의 제반 사정이 더욱 문제이다.

경제의 침체, 저급한 분쟁정치의 연속, 사회적 갈등의 격화, 도덕의 피폐, 통일과업의 난항 및 인접국의 불손, 불화 등이 모두 그러한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원래 매일 난제에의 직면과 그 해법 안출로 점철되는 것이아닌가. 혼돈에서 합리적 질서의 수립을 과제로 안고 사는 것이 인간의 삶임을감안하면 오늘의 현상에 좌절할 필요는 없겠다.

필자는 여기서 날로 격심해지는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분쟁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양상들이 혼돈에서 질서를 수립할 과제에 속한 중요사안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이에 대해서는 일찍이 공자(孔子)에게서 현명한 답이 나왔다. “화해롭게 지내되 편당화 하지않는 태도”(和而不同)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쉬울 듯한 이 태도의 실천이우리에게는 왜 이리도 어렵기만 할까.

이제까지 이 땅의 정상배들은너무도 이기적인 목적에서 지역감정을 이용해 왔다. 정치적인 분열의 씨앗은 지역감정의 조장에서 비롯됐다. 이 좁은 땅에서 더 이상 동서남북의 지역감정으로 인한 분파작용이 지속되어서는 아니 된다.

분열, 대립의 중요 원인으로또 사람들은 우리의 단순한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 예증의 하나로 조선시대의성리학이 낳은 명분론 치중 사고의 전통을 거론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에는 다원적 사고를 수용하는 전통이 있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지속됨을알아야 한다.

고대부터우리의 사상계는 샤마니즘 위에 유교 불교 도교가 공존 습합하였고, 그런 경향으로 해서 오늘날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 못 지 않는 다종교의양상을 이루고 있다.

우리에게는다원적 사고의 수용능력이 풍부함을 인정하여야 한다. 열린 자세를 취하는 것이 우리 사상의 전통적 성향이다.

성리학이 명분을상당히 중요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성향은 어디까지나 합리성을 존중하는 사고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성리학의 근본적이고도 핵심을이루는 이기론(理氣論)을 보면 흑백논리와는 다른 점이 많다. 그것은 이와 기의 상대적 의존성을 전제로 논구되는 것이어서 이, 기 중 어느 하나만을 택하고 다른 하나를 배척하지 않는다.

원래 참과 거짓을 밝히는일 외의 분야,특히 이념적 가치론의 분야에서는 한 견해만 용납되고 다른 견해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식의 절대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한 절대론은 하나의 독단과독선을 낳을 뿐이다.그런분야에서는 모든 견해가 상대적이어서, 나의 견해 외에 다른 견해도 가능하다.

따라서 다른 견해도 존립할수 있는 근거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여지의 금도를 우리는 항상 지녀야 한다. 대화의 가치는 이 때 상대편의이해를 고양하는 데에 있다.

대화하고 이해할 때 우리는한 편파를 이루지 않으면서 화해할 수 있다. 사회적인 갈등이나 정치적인 분열의 해법은 다른데 있지 않다.

나의 주장만이 절대적인 것이라는독단과 독선에서 벗어나,타인의견해를 이해하고 용납하는 도량을 발휘하는 데 있다.

윤사순 교수 고려대ㆍ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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