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사에서 관직과 재력에 따라 거론되는 ‘세칭’ 명문가들의 상당수가 친일행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 그런 면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집안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명문가로 자리매김돼야 마땅하다.만주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李會榮ㆍ1867~1932) 선생과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李時榮ㆍ1868~1953) 선생 형제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문. 이회영 선생은 국권이 침탈되자 여섯 형제 모두가 중국으로 건너갔다.
만석꾼의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써 일부 형제가 굶어죽기도 했다. 이종찬(李鐘贊) 전 국정원장은 이회영 선생의 장남 이규학(李圭鶴ㆍ작고)의 3남이며, 이종걸(李鐘杰) 민주당의원은 이회영 선생의 막내 동생인 이규동(李圭東ㆍ작고)의 장남이다.
민필호(閔弼鎬ㆍ1897~1963) 선생 집안은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직계인물만 10명에, 방계 인척까지 합치면 18명이나 된다.
선생은 임시정부에서 김구(金九)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였고 해방 이후 대만 주재 초대 총영사를 역임했다.
장인이 임시정부 국무총리 겸 외무총장을 역임한 신규식(申圭植ㆍ1879~1922) 선생이며, 장녀 영주(泳珠ㆍ78)여사의 부군은 김준엽(金俊燁ㆍ81) 전 고려대 총장이다.
국내 최초의 의사면허 소지자로서, 신민회 사건이후 만주로 피신해 독립운동을 벌인 김필순(金弼淳ㆍ1878~1919) 박사 집안도 쟁쟁하다.
조카 김마리아(1891~1944) 여사는 3ㆍ1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임시정부 의원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대모이며, 임시정부 외무총장과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金圭植ㆍ1881~1950) 선생이 매제. 김성국(金成國) 홍익대 공대 교수가 증손이다.
삼균주의를 주창하고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조소앙(趙素昻ㆍ1887~1958) 선생 가문도 독립유공자 11명을 배출했다.
맏형 용하(鎔夏ㆍ1882~1939)씨는 미국서 한인들을 규합해 독립운동을 벌였고, 동생 용주(鏞周ㆍ1889~1937)씨도 6ㆍ10만세로 옥고를 치렀다. 장남 일제(時濟ㆍ1913~1947)씨는 임시정부 외교부원으로 활동했다.
조순형(趙舜衡) 민주당 의원의 조부 조인원(趙仁元)씨와 숙부 조병호씨(趙炳鎬)씨는 아우내 장터 만세 사건을 주도한 인물. 조 의원의 부친은 대통령 후보를 지낸 조병옥(趙炳玉ㆍ1894~1960) 박사다.
또 김희선(金希宣) 민주당 의원의 조부는 김구 선생과 한독당에서 활동한 김성범(金成範ㆍ작고) 선생이며, 독립군 제 3지대장을 지낸 김학규(金學圭ㆍ작고) 장군은 작은 할아버지다.
15일 뒤늦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김 락(金 洛·1863~1929) 여사의 집안도 의병장인 시아버지 이만도(李晩燾) 선생을 비롯, 무려 26명의 친·인척이 독립유공자이다.
이민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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